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움직임이 종교계를 중심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적극적인 정치 참여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점도 있지만 ‘네거티브’ 확산과 ‘진영논리’의 기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신대, 감신대 등 신학대 교수 28인은 지난달 30일에 낸 공동 성명에서 “우리의 정치판이 주술에 휘둘리고 있음은 통탄할 일”이라며 국민의 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무속’ 논란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더 나아가 윤 후보 관련 논란에 동조하거나 입을 닫은 기독교계 인사들에 대해 “그들은 정치 권력을 지향하는 종교인이요 실상은 반기독교적인 세력”이라고 몰아세웠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지난달 25일 발표한 성명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배우자가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무속적인 행태가 전근대기의 이른바 ‘무당정치’, ‘무당통치’의 예고편이라는 예감과 불안을 지울 수 없다”며 “사사로운 욕망을 관철하기 위해 무속에 의존하는 정치는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일부 신학대 교수들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공통으로 비판한 ‘무속’ 논란은 지난해 9월 국민의힘 후보 경선 TV토론 과정에서 윤 후보 손바닥에 ‘왕(王)’자가 그려진 모습이 포착되며 시비가 시작됐다. 당시 경선에서 역술인이 윤 후보의 멘토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윤 후보는 “대부분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최근 진보진영 인사들이 제기한 윤 후보의 ‘무속’ 의혹 문제는 주로 그의 부인 김건희 씨의 녹취록에 기초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비선정치·무속을 염려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발표한 성명서에 보면 “최근 MBC스트레이트 보도를 통해 드러난 모 정당 배우자의 무속정치와 비선정치 연루 행태로 인해 사회적 파장이 적잖다”며 윤 후보의 ‘주술’ 의혹을 비판했다.
그런데 ‘무속’ ‘주술’ 의혹이 윤 후보 측에만 해당한 건 아니다. 조선일보가 이미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아내 김혜경 씨의 점집 출입 의혹을 보도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재명 후보의 장남 이 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지난해 11월 인터넷 커뮤니티 ‘포커 고수’에 올라온 무속 관련 게시물에 “우리 엄마 이것 많이 한다”는 취지의 댓글을 달면서 의혹이 정황으로 번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신학대 교수들과 천주교 사제단 측은 윤 후보와 부인 김 씨 문제만 집중적으로 제기했을 뿐 이재명 후보의 부인 김 씨에 대한 언급이 없어 편향적이란 지적도 있다. 김건희 씨의 경우 녹취록이 확실한 물증이라는데 판사 앞에 선서하고 한 법정 증언도 아니고 개인과의 대화를 녹음한 것에 오류가 없다고 단언할 증거는 없다.
또 성명을 발표한 신학대 교수 28인 중에 합동, 고신, 합신 등 보수교단 신학대 교수들은 단 한 명도 없다. ‘무속’ ‘주술’ 등의 문제에 신학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보수 교단 소속 교수들은 왜 성명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럼에도 대선 이슈로 떠오른 ‘무속’ ‘주술’ 문제에 대해 교계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도 ‘주술’은 “점치는 것”, “술법” “심령술”로 불리며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으로서 수차례 금지되었다. 따라서 대선 후보든 그 부인이든 연관이 되었다면 지지, 반대를 떠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교계의 이런 우려와 걱정을 씻을 길은 후보와 가족에게 달렸다. 이제라도 ‘무속’ ‘주술’ 등과 결연히 단절하고 신뢰를 회복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 ‘주술’ 문제가 핵심일까. 시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국민은 우리 사회에 ‘공정’과 ‘정의’가 무너진 것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 “진보는 곧 민주”라는 통념이 뿌리내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이런 기존의 통념이 완전히 깨지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줬다. 비단 조국 전 장관 가족의 비위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민주주의 법질서와 상식 그 뒤에 ‘진영논리’라는 괴물이 자리를 틀고 앉아 국론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선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 헌법에 명문화된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마저 ‘진영논리’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에 처해있다. 국민의 기본권이 통치 행위 또는 정치적 ‘진영논리’에 휘둘리는 사회는 겉모양만 민주주의일 뿐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마저 무시하는 ‘진영논리’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다. 코로나19 방역을 구실로 한국교회에 가해진 예배 통제를 그 누가 오로지 과학의 영역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교회는 그럴수록 부단히 영적 예배를 회복하는데 더욱 힘써야 한다. 그것이 정치 방역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헌법의 첫 번째 조항이다.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방해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막거나,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방해하거나, 정부에 대한 탄원의 권리를 막는 어떠한 법 제정도 금지하는 게 미국 수정헌법의 근간이다.
자유민주주의가 굳건히 뿌리를 내린 미국과 이제 막 돛을 올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왜 대한민국이 민주화 이후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기본권이 후퇴하게 되었는가에 종교계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고 본다.
이제 한 달도 채 안 남은 대선이 끝나고 나면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교계가 반대하는 주요 법안들의 입법 시도가 본격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에게 이번 대선은 매우 중요하다. 온갖 네거티브와 논란으로 마음을 정하지 못한 기독교인이 적지 않으리라 본다. 그러나 선거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민주적 제도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외면하면 대한민국은 점점 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