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기독교인이라 불리는 이들도, 기독교 신앙과 관련 없는 이들도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빌리면, 모든 사람이 ‘기독교를 정의하는 척도’인 셈이다. 그것이 왜 문제인가? 기독교인은 바른 믿음이 아닌 광신이나 맹신으로 나아갈 수 있고, 비기독교인 역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무지의 오류를 범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내가 꼽는 가장 큰 문제는 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 사이에 대화가 단절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기독교인끼리도 원만히 대화하기가 힘들다. 기독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분모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불통을 넘어, 대화를 할수록 서로 불필요한 오해만 쌓일 뿐이다.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대화하려면 먼저 최소한의 정리된 토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정리한 내용을 가리켜 무엇이라 부를까 고민하다가 ‘기독교 교양’이라는 단어를 꼽아 보았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교양’이란 “독립된 개인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여러 분야를 망라한 일정 수준의 지식이나 상식”을 뜻한다. 그렇다면 ‘기독교 교양’이란 ‘기독교에 대해 대화하기 위해 마땅히 가져야 할 일정 수준의 지식과 상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정확히 그러한 의미의 ‘기독교 교양’을 다룬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기독교’를 주제로 대화하기 위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지적 토대 말이다
손성찬 – 모두를 위한 기독교 교양
신앙은 외로움과 지루함을 잘 이겨낼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가는 길에서 홀로 외롭게 거슬러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무슨 특별한 체험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기도실에서는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삶의 자리에서 그 믿음은 전혀 실천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짜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생 믿음의 여정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도 다 살아가는 인생 여정을 우리도 살아갑니다. 뭐가 다릅니까? 다릅니다. 그들은 믿음의 여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인생 속에서 수많은 일들과 다양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을 놓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이 중요합니다. 순간순간 우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킵시다. 하루하루 예배를 중시여기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늘의 소망으로 심령을 채웁시다. 그것이 필연입니다. 그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최현범 – 믿음의 위인들을 통해서 본 구약 파노라마
마법주술이 기독교 영성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믿음말씀운동, 번영신학, 긍정의 힘, 사차원의 영적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가르침은 주술과 마법의 공식과 거의 같다. 성도가 자신의 소망을 꿈꾸고, 믿고, 바라보고, 이룬 것처럼 생각하고, 이룬 것 같이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그리고, 이룬 것처럼 말하며, 이룬 것처럼 행동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사상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들의 영적 결국은 인간이 하나님을 조종하는 위치에 서서, 인간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낸다는 점에서 주술과 마법과 같은 것이다. 이들의 영적 결국은 마법과 주술을 기독교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과 만물, 인간은 가시적 물질적 영계와 비가시적 물질적 영계가 공존하며 상호관계를 맺고, 힘의 강약으로 운행되는 원리 안에 존재한다. 나아가 가시적 물질적 영계와 비가시적 물질적 영계는 영적 존재의 영적 에너지의 지배와 다스림을 받는다. 이는 우주와 만물 그리고 인간의 존재와 운명은 영적 존재의 목적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의 목적이 인간의 삶이며 운명을 이룬다. 그렇다면 유한한 인간이 가장 복되게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삶과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생명의 능력이다.
윤선희 – 사단이 내민 두 개의 선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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