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회 전국 S.F.C. 중고등부 동기수양회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사모하는 S.F.C.(엡1:3)’라는 주제로 1월 17일부터 18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한다.
수양회 첫날인 17일 개회예배에서 김주원 목사가(경향교회 청년회/SFC)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갈 2:20)’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김주원 목사는 “여러분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고 열정을 바치는 그것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있는가이다. 각자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문제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시고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냐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혹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열심이라면 그건 바로 죄라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부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의 모든 수고가 하나님 뜻에 부합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의 모든 수고와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고, 그 방향성이 바르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깨어 있는 자들은 세상의 다른 것들은 헛된 것으로 여기고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십자가를 위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도 버릴 수 있고 진짜 하기 싫은 것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는 SFC의 삶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는 “기독교의 상징이 왜 십자가인가. 더 중요한 것은 십자가로 내 삶을 드러내고 있는가이다. 당시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다. 유대교에서 저주받은 자가 달려 죽는 죽음이 십자가였다. 헬라인은 십자가를 어리석다 여겼다. 당시 십자가는 로마에 대해서 반역하거나 진짜 악한 죄를 지은 사람에게 하는 형벌이었다. 역사학자 키케로는 십자가 형벌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이라고 말했다. 혹시 우리도 마음속에서 십자가를 조롱하고 평가절하하고 터부시하지 않는가. 교회에 모여서는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의 징표라고 말하며 찬양하고 눈물 흘린다.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학교, 친구들 사이에선 십자가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 하는 삶이 우리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여러 가지 거리끼는 것들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십자가를 붙잡아야 하는가. 예수님이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내가 신이지만 사람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누가 예수님을 죽인 것인가. 사도행전 2장에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라고 했다. 당시 유대 백성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했던 베드로의 설교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손에 하나님이 죽으셨다. 하나님이 준 생명과 능력을 가지고 자신의 창조주를 죽인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셨다. 우리가 죽였고 동시에 그분이 창세 전에 성부 하나님과 구속 언약을 맺으시고 능동적으로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셔서 죽어주셨다. 이 두 가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라며 ”죄인들이 죽였지만 동시에 주님이 스스로 그 죽음을 택하셨다”고 했다.
그는 “왜 죽으신 것인가. 이사야서 53장에 우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우리에 예수님을 조롱하고 반대하는 사람만 포함된 것이 아니다. 그 우리에 내가 있다. 우리가 이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그 죄가 우리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성이 우리를 가려버렸다. 선과 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율법은 너무 거룩해서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죄인 아닌 자가 없다. 그런데 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선과 악을 판단하니 내가 나를 볼 때 죄인이 아니게 된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필연적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간다. 죄의 문제에 대해서 민감함이 없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칼 메닝거는 ‘죄는 어디로 갔는가?’라는 글에서 죄가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범죄로 바뀌었다고 한다. 더 이상 우리의 죄는 하나님 앞이 아니라 검사, 판사 앞에서 말하면 된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게 죄가 아니라 세상의 법만 안 어기면 괜찮다. 두 번째, 죄가 질병으로 바뀌었다. 내가 동성애를 하는 것은 환경의 문제, 심리적인 문제 기질적인 문제가 있어서 죄를 범한다는 것이다. 죄는 죄가 아니라 나는 그저 위로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책임으로 돌려버렸다. 자기가 죄를 범하면서 그 죄의 책임을 한 집단, 국가에 돌려 버린다. 성경적인 죄의 개념이 사라져버리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오늘 우리에게 내가 죄인임을 인식하는 깊은 자각과 함께 나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인식이 있는가. 우리가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 가운데 얼마나 예수님을 원망하고 조롱하는가. 가요 한 곡, 친구와 맛집, SNS를 통해 위로받으면서도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는 위로를 못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미 신령한 복을 받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라고 하나님이 내게 아무것도 안 해주신 것 마냥 하나님을 취급한다”며 “우리가 또 예수님을 못 박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출애굽기 12장에 유월절 어린 양을 불에 구워 먹으라 했다. 성령의 불에 의해서 믿어지는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것은 내 몸이고 내 피니 먹고 마시라 하신다. 이건 단순히 몸과 피라는 걸 알려주는 게 아니다 이 피가 내 죄를 사하고 나를 여전히 살게 하고 나로 하여금 죄를 이기게 하는 피라는 것까지 알려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예수님의 말씀과 피와 살을 먹는다는 건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까지를 말한다”고 했다.
이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구약에 만나를 주시는 건 쉽다. 예수님은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죽었다고 하셨다. 그 만나, 기적 몇 번 체험하는 게 우리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생명의 떡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주신 게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죽이시는 희생으로 준 것이다. 우리는 그 만나를 먹어야 한다. 구약의 만나와 가치가 다르다.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있느냐 믿고 있느냐는 한 번 있다가 없어질 기적 같은 게 아니다. 나 같은 죄인 때문에 당신의 살과 피와 전부를 내어주신 그 예수님을 만났냐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본문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건 현재 완료다. 한 번 일어났던 것이지만 여전히 그 효과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 분이 내 안에 사신다는 건 현재형이다. 지금 나에게 또 미래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옛날에 은혜받은 것 말고 오늘 내가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교제하는 예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냐는 것이다. 그게 바로 십자가를 붙잡고 살아가는 성도의 바른 삶”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우리가 너무 쉽게 십자가를 떠나고 있지 않은가. 빌립보서 3장 18~19절에 우리가 얼마나 땅의 일을 생각하는가. 내가 먹고 마시고 놀고 내 감정과 내 기분, 내 비전 그것이 다 십자가의 원수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바울처럼 작정해야 한다. 수양회 기간 내가 받은 이 신령한 복이 무엇이고, 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십자가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닫고 살아내는 그리스도를 위한 십자가의 SFC가 되기를 축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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