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는 이스라엘 중에도 아주 가난한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나사렛은 이방인과의 접촉이 많은 무역로가 통과하는 곳으로 유대사람들에게 부정한 지역으로 무시와 차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면에 있어서 비천해 보였던 마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하나님의 역사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주위 열강들 대신에 자그마한 나라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택하실 때 유대의 지도자급에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 중 당시 농부나 목동과 같은 비천한 직업의 사람들도 하나님은 택하셨습니다.
신약시대의 사도들도 마찬가지로 비천한 신분들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더욱이 베들레헴 마구간을 예수님의 탄생지로,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온전한 능력이 가장 연약하고 낮은 곳에서 온전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서 29절 말씀은 이런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이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의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메시아의 역사를 위해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선택에 마리아는 거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너무 어리고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수태고지에 대해 그렇게 반응했다고 해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초라하고 작은 모습만을 바라보았다면 주님의 사명을 받아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을 믿고 의지하며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눅1:38)라고 고백하며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희망의 싹이 내 속에서 자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나의 초라한 자아상으로 인해 그것을 외면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의 선택을 외면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겸손히 주님 앞에 순종했습니다. 마리아의 순종은 결코 자신감에 넘치는 순종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겸손한 순종이었습니다.
2013년에 서거한 넬슨 멘델라는 현대 역사에 참 별처럼 빛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남아공 흑백 문제를 이겨낸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1994년에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가 취임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어두움이 아니라 빛입니다. 우리 자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어떻게 나 자신이 지혜롭고, 훌륭하고, 재능이 있고 또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라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왜 여러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초라하다고 낮추며 삶에 아주 보잘 것 없는 위해 기도한다면 우린 이 세상을 섬길 수 없습니다.
나 자신 스스로 비천하게 만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중얼거리거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도록 별 관계없이 사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고 희망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신 이 영광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도록 격려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두려움에서 해방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초라하게 느끼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르심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위한 사명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내가 감당할 사명임을 외면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로 인해 나타나기보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 그냥 그렇게 묻혀서 그들이 바라는 행복을 누리며 평범하게 살기를 바랄 때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거부하고 거기서부터 탈피하면서 우리는 자신에게 나는 아니라고 위로하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그들을 불편하지 않도록 애를 씁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브랜드를 입고 마시고 타고 다니며 세상이 부러워하는 성공이란 것을 추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리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화 거리를 찾으며 뭐 그렇게 별나게 살 필요가 있나고 말하며 그렇게 대중 안에서 묻혀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빛을 나타내는 삶에 부담감과 두려움이 유혹적인 어둠의 한 부분이 되어 우리 자신 스스로가 내 안에 있는 그 영광을 죽여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린 처녀, 자기 자신을 비천하다고 생각하는 마리아는 자신을 하나님에게 맡기며 고백했습니다. "주여,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한 연약한 여인의 순종을 통해 인류 구원을 위한 메시아의 탄생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작은 순종을 통해 놀라운 영광을 드러내시며 그 분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김경진 목사(기쁜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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