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들어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다시 울려 퍼지며 성탄절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저작권과 소음 문제 등으로 수년 전부터 사라졌던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에서 다시 울려 퍼지게 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올 연말에 캐럴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종교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1일부터 성탄절 당일까지 ‘12월엔, 캐럴이 위로가 되었으면 해’ 제목의 캐럴 활성화 캠페인을 함께 전개하기로 뜻을 모음으로써 이뤄졌다. 기독교계와 천주교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연말 따뜻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자는 뜻에서 문체부에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와 멜론, 벅스뮤직 등 음악 서비스 사업자들의 동참도 이어졌다.
사실 성탄절 시즌에 거리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게 하려고 종교계가 정부 부처와 손을 맞잡았다는 것 자체만 보면 무언가 어색하고 낯설다. ‘정교분리’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시빗거리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거리에서 캐럴이 사라지게 된 원인을 생각해 보면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우선 거리에서 캐럴이 사라지게 된 첫 번째 요인으로 강화된 저작권법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캐럴 음원 사용에 부담을 느끼게 된 영업시설이 적지 않다. 사실 저작권료 부과 대상은 면적 50㎡(약 15평) 이상의 대형 시설에 국한되고 그 이하는 해당이 안 된다. 그런데도 덩달아 위축된 분위기 때문에 캐럴을 트는 상점들뿐 아니라 교회에서까지 금지곡 아닌 금지곡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저작권료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 관광객들로 늘 북적이던 명동 등 도심의 상점가는 정부의 에너지 절약 시책으로 겨울철 난방 규제 눈치를 봐야 했다. 겨울철 적정 실내 온도 유지를 위해 문을 닫고 영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음악을 크게 틀어도 밖에선 잘 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스피커를 밖에 설치하면 소음 기준에 저촉을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런 규제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거리에서 캐럴을 추방한 공범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성탄절에 즈음해 크리스마스 캐럴 캠페인을 민관이 함께 전개하게 된 것은 코로나로 힘들고 지친 국민에게 밝은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의미만으로도 각별하다. 공중파 방송사들이 각기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방식으로 참여하고 여기에 더해 저작권위원회가 ‘징글벨’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등 캐럴 22곡을 무료 제공하기로 함으로써 캠페인의 저변 확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런 캐럴 캠페인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된다. 사회 양극화와 침체된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긍정적인 효과가 극히 제한적일 거라는 견해도 있다. 특히 불교계는 캐럴 활성화 캠페인을 기독교, 천주교와 정부 부처가 손을 맞잡고 진행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불교계는 지난 1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캐럴 캠페인을 기독교의 선교행위라고 규정하고 왜 정부가 특정 종교의 선교에 도움을 주냐는 식의 비판을 쏟아냈다. 더 나아가 국내 주요 불교 종단들의 연합단체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정부에 ‘크리스마스 캐럴 캠페인’의 중단과 관련 예산의 집행 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서를 지난 1일 법원에 제출했다.
불교계가 이처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캐럴 캠페인을 무조건 특정 종교색을 강요한다는 식으로 여기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크리스마스는 알다시피 전 세계적인 축일이다. 기독교에 뿌리를 둔 서구국가들이나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공산권을 제외한 지구상의 어떤 나라에서도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징글벨’을 트는 것을 선교 목적이라 할 수 있겠나.
정부 부처가 특정 종교에 편향적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성탄절에 거리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는 일에 엄청난 국고가 낭비되는 것도 아니다. 그간의 지나친 규제를 일부 완화해 사회를 좀 더 밝게 만들어 보자는 건데 이것이 정부를 상대로 법정투쟁까지 벌일 일인가 싶다.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된다면 매년 초파일에 즈음해 전국 구석구석까지 내걸리는 연등과 교통을 차단하고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봉축 거리행사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타종교의 시각에서는 얼마든지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다종교국가에서 정부가 특정 종교를 편애해서도 또 배타적으로 대해서도 안 되겠지만 종교 또한 국민이라는 큰 틀 안에 있다는 점에서 이번 캠페인은 타종교라도 상식선에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캐럴 활성화 캠페인에 문체부가 협조하게 된 것도 대선을 앞둔 정치적 고려라기보다는 국민 통합이라는 긍정적인 시너지를 염두에 둔 판단으로 여겨진다.
불교계는 성명서에서 “종교색이 짙은 캠페인은 종교화합과 종교 간 평화를 해치지 않는지 다각도로 살펴봐야만 한다”고 했다. 온당한 지적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것을 문제 삼아 소송까지 하는 것이 종교간 화합과 평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살펴볼 문제다. 사회 갈등 해소와 국민 통합에 이바지해야 하는 종교 본연의 역할을 놓고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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