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의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이 17년 연속 인권담당위원회를 통과해 다음 달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채택될 전망이다. 올해 결의안에 주목할 점은 처음으로 국군포로들의 인권 침해 문제가 담겼다는 점이다.
이번 결의안의 초안은 유럽연합(EU)이 담당했다. 미국의소리(VOA)는 EU를 대표해 발언한 슬로베니아 대표가 북한의 심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지난 1년 동안 북한 인권과 관련한 “어떠한 개선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올해까지 3년 동안 결의안 공동제안국의 명단에서 ‘대한민국’이란 이름은 자취를 감추었다.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북한 눈치보기나 다름없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출석 당시 여야 의원들의 북한인권결의안 제안 동참 여부에 대한 질문에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응 방안은 전년 조치 내용을 감안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답해 올해도 공동 제안에 ‘불참’할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북한 정권의 주민 인권 침해를 규탄하고 책임 규명을 촉구하는 내용의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해왔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9년부터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대신 결의안의 ‘컨센서스’(합의) 채택에만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 같은 우리 정부의 태도에 대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해석하면서도 북한 인권을 외면하는 것이 북한 인권 개선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에서 미 국무부 북한인권 특사를 지낸 로버트 킹 전 특사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북한 인권에 대해선 손을 뗐다”고 단언할 정도다.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첫 번째 이유는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과 이어 미북 정상회담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2019년 미북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13년 2월 25일부터 2017년 3월 10일까지 모두 26차례 미사일을 쐈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10일부터 지난 10월 19일까지 모두 35차례의 미사일 발사 도발을 감행해 이전 정부를 능가했다. 이런 지표들은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외면하면서까지 취하고픈 대북환상에 대한 ‘실패’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북한 인권에 대한 정부의 의도된 침묵과 방기가 유독 더 심각해 보이는 이유는 올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 최초로 국군포로의 인권 탄압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탄압 문제는 북한의 주장대로 내부 간섭으로 비칠 수 있어 그렇다 치더라도 6.25 전쟁 당시 포로로 억류된 자국민의 인권 문제까지 외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6.25 전쟁 이후 북한에 강제 억류된 국군포로는 5~7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중에 정전협정 이후 정식으로 고국으로 송환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동안 북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는 80여 명으로 이들은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탈북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100여 명이 오늘도 고국으로 돌아갈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그동안 포로 송환 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였다. 그 이유는 북한이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아예 부인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포로로 잡힌 국군이 모두 자발적으로 북한에 남길 원해 북한 주민이 되었기 때문에 포로는 한 사람도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탈북해 고국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사실과 전혀 다르다. 고 허재석 씨는 1953년 7월 4일, 정전협정을 앞두고 강원도 최전방 봉수리 전투 중에 중공군에게 생포돼 북한에 강제 억류되었다가 47년만인 지난 2000년 탈북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북한에 억류돼 있는 동안 숱하게 겪은 고초를 ‘내 이름은 똥간나새끼였다’는 제목의 자서전에 생생하게 기록했다.
11월 2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는 자신의 병명이 말해주듯 수 백명의 국군포로들이 지금도 아오지, 신창, 무산 등 북한의 탄광 막장에서 비참한 생을 마감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정부가 그동안 무슨 노력을 해 왔고 또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할 때 기억해줄 것이라는 믿음, 이국땅에서 고난을 겪어도 국가가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엊그제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임기가 6개월 남았는데 저는 아주 긴 기간이라고 생각한다”며 “굉장히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기간”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그런 언급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민을 국가가 기억해주고, 국가가 구해줄 것이라는 그 믿음을 실천할 기간이 아직 6개월이나 남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제발 그 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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