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소기천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예수말씀연구소 소장)의 논문 ‘이혼과 관련된 고난의 문제에 대한 개혁신앙적 이해에 관한 연구’를 연재합니다.
III. 신약성서에 나타난 이혼
신약성서의 여러 곳에서 바울은 결혼과는 상관없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보존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롬 6:12; 12:1; 고전 6:13, 15, 19-20; 15:44; 고후 4:10; 갈 6:17; 빌 1:20; 3:21; 살전 5:23). 과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혼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신약성서에서 이혼의 문제를 설명할 때는 avpolu,w와 avfi,hmi와 cwri,zw라는 세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동사들과 관련하여 이혼 주제를 다루고 있는 구체적인 본문들을 다음과 같이 제한하여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한다.
1.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이혼(마 19:1-12)
1) 병행본문 비교(막 10:2-12; 눅 16:18)
예수께서 이혼에 대해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시는 기사를 담고 있는 마가복음 10장 2-12절에서는 이혼의 합법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이혼법이 나오게 된 이유, 즉 인간 마음의 완악함을 지적하고, 다음으로 이혼이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아니라는 것, 즉 하나님이 짝지어 준 것을 인간이 나눌 수 없다고 밝힌다. 이혼의 정당한 사유에 대한 언급은 아예 나와 있지 않다. 마가공동체에서 이혼은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허용될 수는 있지만 이것은 위로의 말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혼을 죄의 상태에 근거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르침이 마가공동체에게는 이혼과 재혼이 제7계명을 어기는 간음죄에 해당한다는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구절에서는 이혼한 후 독신으로 남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이혼에 대한 신명기의 규례에 대해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결론을 짓고 있다. 마가는 여기에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신 가르침까지 덧붙인다(막 10:11-12). 이것은 누가복음 16장 18절과 거의 병행하며, 마태복음 5장 32절과 19장 9절이 신명기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누가복음 16장 18절에서 예수께서는 이혼 후 재혼한 사람이나 이혼한 사람과 결혼한 사람 모두 간음죄를 범한 것이라고 말한다. 마가복음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이혼이 허락되는 정당한 사유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 이들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는 형식을 지닌 누가의 말은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독창적이다.
첫째, 그것은 이혼의 절차가 실제로 재혼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부한다. 이혼 후에 재혼하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조항의 말을 통해서 이혼에도 불구하고 결혼의 연합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둘째로, 예수께서 간음을 재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약과 전통 율법에서는 결혼한 남자가 정혼하지 않은 여자와 성적 관계를 가져도 간음한 것이 아니었다. 반면, 결혼한 여자는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을 경우 항상 간음이라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말씀에 의하면, 아내가 남편에게 충실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편도 동일한 의무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즉 부부의 권리에 관해서 남편과 아내를 동등한 입장에 서게 하고 있다. 어떤 쪽에서의 음행도 간음이며, 단지 아내만의 음행이 아닌 것이다. 셋째로, 이 말은 바리새인들이 승인하고 있는 일부다처를 배제한다. 남편이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두 번째 아내를 맞아들인다면 그는 첫 번째 아내에게 간음을 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혼 없이 재혼하는 것은 간음일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이혼 후에 재혼을 간음이라고 선포함으로써 실제적인 이혼과 일부다처와 남자만의 음행을 배제하고 있다.
2) 마태복음 19장 9절의 의미
이혼과 관련된 마태복음 19장 3-12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구절은 9절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마태의 예외조항, 즉 이혼이 허락되는 정당한 사유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마태는 그 이유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장 31-32절은 이혼의 정당한 사유로 음행을 들고 있으며, 이혼한 사람의 재혼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누구든 이혼한 사람과 결혼하면 간음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더해서 마태복음 19장 3-9절에서는 오직 음행만이 이혼 사유가 된다고 말한다. 또한 음행에 의한 이혼의 경우만 제외하고 그 밖의 모든 재혼은 간음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말한다. 헤르마스(Hermas)에 따르면, 적어도 원시교회 일부 전승은 마태복음 19장에 언급된 것과 같이 이혼은 별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재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언제나 뉘우침의 가능성이 있었고, 그 경우 부부 중 어느 한 편은 잘못을 범한 상대와 정상적 결혼생활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본 구절에서 예수는 가장 근본적인 정신을 상기시키면서 이혼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며, 법적인 예식도 두 당사자의 재혼 승인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마태의 예외조항, 즉 “음행한 연고 외에”라는 조항이 생겨난 원인은 무엇인가? ‘음행’이라는 용어의 정의는 정확히 무엇인가? 마태의 예외 조항은 이혼만 다루는 것인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마태가 예수의 정신을 유지하길 원했지만 교회의 실제적인 필요성에 적용할 때는 수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예외조항이 생겨난 것이다. 마태복음 19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3-9절에 있는 이혼에 관한 토론 후에 곧이어 고자에 대한 견해가 나온다. 전통적으로 10-12절은 천국을 따르기 위해 독신으로 남아있는 자들을 다루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19장 3-9절의 결혼에 대한 토론 후에 놓여 있다. 그 문단 전체의 논쟁 방향은 하나님 앞에서 일부일처의 결혼에 대한 신성함과 위대함을 세워가는 것이다. 여기서 제자들의 반대는 예수의 말씀으로 명백히 답변되어 있다. 그것은 실로 어떤 사람은 천국을 위해 고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고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독신을 수용한 자들이라면 예수는 제자들의 입장을 분명히 승인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천국을 위한 고자’를 그리스도께 충성하기 위해 재혼하지 않은 이혼한 자들로 취하면,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라는 12절의 말은 이혼과 재혼에 대한 토론에 대해 강한 도전적 결론을 맺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9절이 온당한 이혼을 한 자에게도 재혼을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도 제자들이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10절)라는 놀람과 분냄을 전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다음으로, 마태복음 19장 9절에서 음행(pornei,a)의 의미도 전체 문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음행이 상대적으로 드문 부정행위에 대한 정확한 용어라면 어떻게 예수께서 샴마이 학파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묘사되고 있고, 왜 제자들이 그렇게 놀랬는지를 알게 된다. 마태복음 19장 9절의 정황에서 바리새인들과의 법적 논쟁을 볼 때 음행(pornei,a)은 신명기 24장 1절의 ‘수치되는 일’을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용어는 다양한 성적 부정행위를 포괄한다.
마지막으로, 19장 9절의 예외조항은 이혼만 다루는 것인가 아니면 이혼과 재혼 모두를 다루는 것인가? 마태가 복음서를 저술하는데 있어 두 가지 기술, 즉 반복과 생략을 자주 사용하는 것에 비추어 봄으로써 이 답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마태는 한 가지 말을 다른 것에 비추어 해석하곤 한다. 따라서 19장 9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 이혼과 간음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가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는 5장 32절의 이혼에 관한 말씀은 여섯 개의 대조(5:21-48) 가운데 하나인데, 예수께서는 옛 사람에게 들려진 것과 자신의 가르침을 비교하고 있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대조는(5:27-30, 31-32) 둘 다 동일한 주제 곧 간음에 대한 예수의 새로운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 두 번째의 대조는 음욕을 품는 것은 ‘마음에 간음’(28절)이라고 기술한다. 세 번째의 대조는 실제로 두 번째에 대한 보충이다. 그것은 간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며, 더 나아가 이혼 후의 재혼을 포함하고 있다. 5장 32a절은 여자의 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녀의 죄에 대해서는 남편에게 비난을 가하고 있다. 여자와 이혼하는 것은 그녀로 하여금 다른 남편을 찾게 만드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간음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여자의 간음에 대해서 전 남편을 비난한다. 5장 32a절에서는 이혼 후의 재혼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되지 않고 다음 구절인 5장 32b절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 부분은 누가복음과도 일치하는데 공관복음의 공통된 견해는 재혼을 수반하는 이혼은 간음이라는 것이다. 마태는 한 가지 더 새로운 사실을 덧붙이는데 이혼 그 자체도 음행의 연고가 아니라면 간음이다. 이 경우 이혼은 간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그녀는 이미 이혼 전에 간음을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랬기에 그녀의 남편이 그녀와 이혼을 원했던 것이다. 이 예외조항은 그녀와 이혼한 행동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간음으로 인한 비난에 대해서 남편을 면제해준다.
둘째, 축약도 마태의 서술 방식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마가(9:43-47)는 죄를 피하기 위해 손과 발 또는 눈을 제거하는 것을 권하고 있는데, 마태(5:29-30)는 눈을 뽑거나 손을 자르라는 말로 줄인다. 마태가 19장 9절에 나오는 이혼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요약하고 있다면 이는 축약 형태로 경구적인 간결함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누가복음 16장 18절과 마태복음 5장 32a절을 합하여 마태의 방식대로 생략하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이는 19장 9절과 구문상으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내용에 있어 서는동일하다. 따라서 마태복음 19장 9절은 5장 32절과 누가복음 16장 18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진술된 원리들을 간결한 문장으로 축약한 것이다. 즉 이혼 후의 어떤 재혼도 간음이며, 음행 외에 이혼 하나로도 간음이란 사실을 마태복음 19장 9절이 확증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예수의 가르침은 이혼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모세율법이 남성들에게 이혼의 합법적인 길을 터준 것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이혼 후에 여성이 당하는 인권적인 수모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안하셔서 인권보호의 차원에서 이혼과 재혼을 간음이라고 규정하셨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은 이혼의 상황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절대 윤리적 차원을 다루어야 하는 성서적 개혁신앙의 근본이 될 수 있다. 상황윤리가 보편주의의 입장이라면, 절대윤리는 특수주의의 입장이기 때문에 개혁신앙이 중시해야 한다. (계속)
소기천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예수말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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