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22일 0시 기준 1,800명대로 치솟으면서 연일 역대 최고, 최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지금의 비상 상황을 ‘짧고 굵게’ 끝내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 이후 전국적으로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 ‘굵고 긴’ 단계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방역 당국이 선택한 수도권의 거리두기 4단계는 그야말로 최고, 최후의 단계다. 더 이상 쓸 카드도 처방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통령까지 나서 ‘짧고 굵게’를 외친 것인데 이제 무슨 수로 방역의 마침표를 찍을지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조치의 효과가 2주 안에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 방역 당국의 예측에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 나타날 풍선효과와 변이 바이러스 등을 고려할 때 마지노선을 2주간으로 잡는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까지 나서 2주만 참아달라고 공언했으면 그야말로 ‘짧고 굵게’ 끝낼 만반의 대책을 먼저 세워뒀어야 했다. 결과론이지만 이 또한 대통령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할 때마다 확진자가 급증했던 이전 사례처럼 근시안적이고 섣부른 방역 정책의 참사라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가 국내에 퍼진 후 말끝마다 ‘K-방역’을 정부의 업적으로 추켜세우며 자랑해 왔다. 그런 ‘K-방역’은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초기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방역정치’로 변질됐다. 자화자찬에 도취된 나머지 백신 확보 전쟁에서 쓰라린 패배를 했고, 지금의 혼란도 그 연상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정신 차릴 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아프리카 아덴만에 파병된 청해부대 장병들의 함내 집단 확진은 정부의 방역 정책의 민낯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21일 현재 귀국한 청해부대 승조원 301명 중 전체의 90%인 270명이 확진 양성 판정을 받았다. 장병들이 감기 증세로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해열제 두 알을 주면서 버티라고 했다니 버린 자식 취급도 유분수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군과 정부가 합작해 만든 이런 인재(人災)를 무슨 변명으로 덮을 수 있단 말인가.
청해부대의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에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눈에는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며 군을 질책하기 바빴다. 그러자 군 통수권자이자 방역의 최종 책임자로서 질책보다 먼저 국민 앞에 사과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에도 서욱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서 장관의 대국민 사과는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벌써 여섯 번째다. 지난 2월엔 동해 북한 귀순자 경계실패로, 4월엔 병영 내 부실급식·과잉방역 논란으로, 그리고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에 대해 6월에서 7월 사이에 세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일각에서 ‘국방장관’이 아니라 ‘사과장관’이란 말이 나올만하다.
사과를 잘하기는 김부겸 총리도 못지않다. 김 총리는 청해부대 집단감염에 대해 서 국방장관과 함께 이번에 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최근 “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급속한 확산이 정부가 국민에게 잘못된 경각심 완화의 신호를 준 때문”이라며 고개를 숙인 지 불과 일주일만이다.
그런데 총리가 방역 책임자로서 사과하는 자세는 이해가 가지만 해외 파병 장병들의 집단 확진 문제까지 총리가 나서서 사과할 문제인가 하는 논란도 있다. 군 통수권자도 아닌 총리가 등 떠밀려 하는 사과를 진정성 있게 받아줄 국민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당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대해 정부를 향해 ‘슈퍼전파자’라고 비판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당시 국내 메르스 감염자는 총 186명 사망자는 36명이었다. 지금의 코로나19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청해부대 집단감염만의 문제가 아니다. 야당이 지적하지 않아도 국민은 이제 방역 정책의 부재, 컨트럴 타워의 혼선, 반복되는 참사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이런 정부를 언제까지 믿어야 할지 자괴감마저 든다. 그 모든 피해가 오로지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방역에 동참해 온 국민에게 돌아오는 악순환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한다.
정부의 방역 참사는 선택적 방역, 불공정한 ‘내로남불’과도 궤를 달리하지 않는다. 수도권에 4단계 조치로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아무리 큰 교회도 주일에 예배드리러 오는 성도들을 19명 빼고는 다 돌려보내야 할 형편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8000명 도심집회를 연 데 이어 또 다시 원주에서 대규모 집회를 하겠다고 큰소리치는 데도 속수무책이다.
총리가, 그리고 장관이 반복적으로 하는 사과는 약발이 다됐다. 일회성 면피성 사과가 되려 역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피나는 노력 없이 말끝마다 “송구,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고 모든 문제가 덮어질 리 없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매번 헛된 기대를 심어주고 자신이 한 공언에 책임도 못 질 거면 사과를 백번 한들 하등에 달라질 게 없다. 오히려 사과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배신감만 커질 것이다. 그럼에도 왜 사과를 논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진솔한 뉘우침이 있고 난 후에야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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