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청년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에 선출되면서 정통 보수 야당이 정치권에 개혁과 쇄신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연일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제1야당에서 30대 당 대표가 나온 것은 헌정 사상 최초의 일이라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던 보수 정치권에서조차 보수 야당이 과연 젊고 참신한 모습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할 수 있을지 기대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변화에 둔감한 ‘수구(守舊)’ 이미지로 젊은 층으로부터 외면을 받아온 보수정당이 30대 청년을 대표로 선택한 것은 아무래도 지난 4.7재보선에서 드러난 표심의 변화가 기폭제가 됐다고 본다. 지난해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의 오만과 독선, 부동산 등 각종 정책 실패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재보선에서 야당의 압승으로 표출되면서 변화와 쇄신에 대한 기대 심리가 이제 차기 대선을 향하게 된 것이다.
사실 보수정당에 시작된 ‘청년 이준석 신드롬’에 대해 처음에는 전문가들조차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준석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번 연속 낙선한 경력에서 보듯 정치인으로서 내세울 만한 간판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당 대표 선거운동 기간 내내 참모도 조직도 없이, 돈 안 쓰는 선거를 치렀다.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SNS와 유튜브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디지털’ 선거운동으로 젊은 표심을 움직였다.
그런 청년 정치인에 대한 변화의 열망과 기대에 호응한 것이 다름 아닌 ‘MZ세대’이다. ‘MZ세대’란 1980년부터 2004년생까지를 일컫는 밀레니얼의 약자인 ‘M세대’과 1995년부터 2004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로 2019년 기준 약 1700만 명, 전체 인구의 약 34%를 차지한다. 이들이 소위 기득권 정치에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보수를 변화와 쇄신을 위한 새로운 ‘희망의 아이콘’으로 바꾼 것이다.
세상은 4차 산업혁명으로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정치권은 여전히 케케묵은 이데올로기의 틀에 매여 보수 진보, 진영논리로 대결해 왔다. 권력을 쥐고 독주하면서 온갖 위선과 불공정, 반칙으로 무장한 여당과 이를 견제해야 할 야당의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청년 이준석’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대표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주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이를 각각의 고명이 살아있는 ‘비빔밥’에 비유했다. 그러나 보수정당에서 불기 시작한 변화와 쇄신의 바람이 정권교체까지 이어질지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야당에서 불고 있는 청년 돌풍에 화들짝 놀란 청와대가 곧바로 더불어민주당 청년 몫 지명직 최고위원 출신의 20대 대학생 박성민 씨를 청년담당 비서관에 초고속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이것이 되려 화근이 되는 분위기다. 청년 세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기 위해 대통령이 배려한 특별한 자리인데 왜 ‘이준석 돌풍’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게 된 걸까.
행정고시를 패스하고도 25년 정도 걸리는 1급 공무원 자리에 무턱대고 25세 대학생을 임명한 것이 첫 번째 화근이다. 또 청와대가 여대생을 1급 청년비서관에 데려다 앉히면서 2030 MZ세대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거라 착각한 것이 두 번째 화근이다. 박 비서관이 다니는 대학에서조차 축하는커녕 ‘박탈감 닷컴'이라는 웹사이트까지 등장해 조롱하는 것이 오늘의 현상을 잘 대변해 준다고 하겠다.
개인의 능력 발휘는 고사하고 아직 아무런 결과물도 내놓을 수 없는 임명 시점에 무조건 불공정 특혜 시비를 거는 것이 성급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당사자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초기에 청년들의 목소리에 좀 더 세심히 귀 기울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야당에서 ‘이준석 신드롬’이 일어나자 이에 맞대응 차원에서 얄팍한 계산을 한 것이라면 누구도 청년들의 공정을 향한 분노에 시비를 걸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정치권의 변화와 쇄신의 바람을 마냥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만은 없는 게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교회마다 청년과 다음 세대가 현저히 줄어들고 고령화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지나친 성장지상주의와 세속화가 교회 위기의 원인이지만 그런 문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지금 교회마다 절박한 문제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뿌리내린 비대면 예배가 청년과 다음 세대들의 교회를 향하는 발걸음을 아예 끊게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있다. 더 큰 걱정은 코로나 상황이 나아져도 청년과 젊은 층이 이전처럼 교회로 다시 돌아올 것이란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코로나는 외부 환경의 문제일 뿐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 내부에 있다. 젊은 세대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진 수직적 구조는 그들 눈에는 케케묵은 구태와 기득권으로 비칠 수 있다. 일부 교회가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 대신에, 각 부서 대표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 등으로 대치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나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더구나 총회와 연회, 노회, 지방회 등에서 평신도, 특히 청년,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정책 구조의 변화는 130년이 넘은 한국교회 역사에도 아직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한국교회에 30대 젊은 보수 야당 대표가 일으키고 있는 바람은 분명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인다. 2030 세대들이 ‘평등 공정 정의’라는 가치의 깃발에 환호하며 한때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으나 독선과 교만, 위선에 염증을 느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처럼 언젠가 한국교회에도 그런 변화와 쇄신 요구가 분노, 또는 외면의 모습으로 닥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이런 변화와 쇄신에 미리 준비하고 대응하지 못한다면 생존의 위기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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