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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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묵상 책갈피] 코너를 통해 신앙도서에서 은혜롭고 감명 깊은 내용을 선택해 간략히 소개합니다.

우리는 ‘체질화된 존재’이기보다는 ‘부름받은’ 자들이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우리를 개개인으로 보고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말한다. 즉, 우리를 독특하고, 특별하며, 고귀하고, 중요한, 아울러 자유로이 반응하는 존재로 대한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무한하고 인격적인 존재로서,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올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인격인 존재다. 그러므로 부름받은 우리는 개개인으로서 거명되었고, 그분과의 관계로 초대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사43:1)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친밀한 관계로서 그분께 알려진 바 되었으므로 감사와 더불어 놀라운 전율을 느끼게 된다.

시편 기자는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시139:6)라고 썼다. 인생을 업(業, Karma)으로 보는 것이나, 당신의 장래는 바꿀 수 없게끔 이미 ‘쓰여져 있다’는 믿음은 소명의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인간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반응이다. 이것은 당신의 인생 대본을 스스로 쓰라는 권면보다 훨씬 더 심오한 것이다. 소명에 응답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순전히 자율적인 존재인 것은 아니다. 그 도전에 반응하는 것이 우리 손에만 달려 있지는 않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소명에 응답하는 것은 그 도전을 향해 일어서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대화를 통해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르시는 분과 부름받은 자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반응하는 것이다.

인생을 숙명론적으로 보고 사전에 결정된 것으로 여기는 ‘체질화된 존재’의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부름받은 존재’는 자유와 미래를 강조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되돌아가서’ 거기에 훗날 나의 운명이 어떻게 암시되고 나타나는지를 살피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에 반응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앞으로 인도해 가신다. 우리는 그분의 소명을 좇음으로써 창조 때 계획되어 있었던 체질화된 존재가 된다. 또한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될 존재, 그것도 부름받은 백성으로서 재창조될 때에만 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그리스도께 응답하고 그분의 부르심을 좇을 때에만 진정한 자아가 되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정체성 문제에 관해 완전히 거꾸로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즉 하나님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으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하는 체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이와 정반대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고 있다.

오스 기니스 「소명」 IVP P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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