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단순하나 우리의 삶은 애매하다!”
인생의 통찰을 주는 한 문장을 통해 저자는 진리를 우리의 삶에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적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사고, 즉 철학하는 삶일 것이다. <철학자의 신학수업>이라는 제목처럼 저자는 신학의 진리를 우리의 철학을 통해 삶으로 연결시켜야 함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있다.
오늘날의 시대는 절대 진리가 사라진 시대이고, 저자는 그것을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시대라고 정의한다. ‘포스트 트루스’는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확인해보려는 생각 없이, 내가 속한 집단, 내가 숭상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면 무엇이나 참이고, 반대편의 주장은 무엇이나 거짓으로 보는 태도라 설명하면서, 이런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분별력’임을 강조한다.
특히 이 책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분별력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그동안 대부분 사람들이 그 출처나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열 개의 유명한 문장을 제시하여, ‘내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지식이 잘못된 것 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고 ‘포스트 트루스’시대에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갈망을, 2부는 하나님을 믿을 때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를, 3부는 팬데믹 시대와 같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하나님과 인간에서는 그동안 체스터턴이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던 ‘유곽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찾고 있다.’라는 말은 체스터턴의 말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작가 브루스 마샬의 소설에 나온 표현임을 밝힌다. 기존에 확실하다고 생각하던 모든 지식에 대해 겸손히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것을 강조하며, 파스칼과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찾고 있는 욕망의 근원이 결국 하나님을 찾는 갈망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흔히 술집을 찾는 사람들은 알코올을 섬기는 사람이고, 돈을 찾는 사람은 돈의 욕망을 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죄를 찾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에게까지 나아가지 못한 욕망임을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두 가지를 명확하게 경험하게 한다. 첫째는 그 문장 자체를 체스터턴이 한 말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에 대해 1차 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분별없이 권위 있는 누군가의 말을 믿어 버린 어리석음을 인지케 해주고, 두 번째는 그 문장의 내용 또한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문맥과 상관없이 좋은 문장을 자기 스스로 해석하고 있었던 오류를 드러냄으로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더욱 명확하게 분별해야 함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 땅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육신처럼 더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 희생의 삶을 설명하며 그 관계를 재조명해준다. 세상을 떠나 수도원적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과는 다른, 조금은 바보처럼 보이며 순수하게 살아가는 삶이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임을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을 통해 알려준다.
하나님 나라의 내면성에 대해서는 함석헌 선생의 메시지를 통해 설명하는데, 그 메시지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면서도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기독교인이 가져야 하는 관용과 용납에 대해 깨닫게 해준다. 특히 저자 개인의 경험을 통해 함석헌 선생의 메시지를 다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그분을 존경할 수도 있고, 또한 그분을 통해 사고를 폭넓게 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2부 신앙과 이성에서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라는 명제를 통해 신앙과 이성의 관계가 서로 배치되는 관계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과 동시에 믿음을 가질 수 있음을 설득력있게 논증한다. 믿음이란 단순히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앎의 요소가 있음을, 또한 마음의 승인과 찬동의 요소와 신뢰와 의존의 요소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며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라는 명제의 참된 뜻을 바르게 이해시켜 준다.
또 마이클 폴라니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예를 통해, 인간의 지식과 앎의 근원에는 모종의 믿음이 있음을 증명하면서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명확히 구분된다는 사고를 명확히 일깨워지며, 참된 믿음의 요소 안에는 이성의 요소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참된 철학자이다”라는 말을 통해 신학을 한다는 것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사랑임을 알려준다. 단순히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포함되어 있는 인간의 삶의 자리까지 포함됨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여 우리의 일상에서 사색하는 삶을 통해 신학과 철학이 일상에서 하나가 될 때 건강한 신앙이 세워짐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3부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에서는 팬데믹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마틴 루터 시대 전염병이 돌 때 루터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통해 설명한다. 하나님을 찾고 믿음과 앎에 대해 이해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가 중요하다. 루터는 “기도와 묵상과 영적 씨름이 신학자를 만든다.”고 이야기 하면서 현실의 고난이 우리를 더욱 하나님께로 인도한다고 고백했다. 또 루터는 전염병 시대에서 기독교인이 가져야 하는 세 가지 원칙을 ‘자기보호’, ‘상호성’, ‘이웃 사랑’이라고 말하고, 특히 ‘약자 우선의 원칙’에 대해 말했는데, 저자는 루터의 원칙이 오늘날 팬데믹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해볼 수 있는 가르침이라 말한다. 그것은 “내일 세상이 무너짐을 알았다 해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적용하게 해준다. 팬데믹 시대에 죽음의 공포가 창궐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써 믿음을 가지고 이웃사랑을 지혜롭게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결론에서 저자는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이야기 하면서 애매한 현실 속에서 진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를 말한다. 전도서를 통해 헛된 인생 속에서 염세주의로 빠지지 말아야하고, 또한 하나님의 선물인 일상을 무작정 즐기는 삶도 아닌 ‘이미’와 ‘아직’의 중간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적절한 균형을 가질 것을 제시해준다. 허무한 인생이지만 그 인생이라는 일상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카르페 디엠’, 즉 ‘현재를 즐기라’는 문구와, 그 즐기는 현실 속에서도 인간은 죽음 앞에 살아가는 연약한 인생임을 기억하는 ’메멘토 모리‘, 곧 ’죽음을 기억하라‘는 문장을 통해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의 태도를 동시에 견지하는 것이 허무한 인생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일상을 사는 지혜임을 알게 해준다.
저자는 ‘기독교 철학은 이성이 성령께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이라는 칼빈의 말을 인용하면서 진정한 철학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오늘의 일상 속에서 진리를 바르게 적용하는 것임을, 그리고 신학과 철학이 우리의 일상 속에 늘 함께 있음을 알려준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자기가 원하는 진리를 믿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사고하고 분별해야 하는지를 단순히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자들 스스로 깨닫게 함으로 잘못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함을 경험적으로 알게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저자의 고민의 깊이가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던진 화두를 곧바로 설명하지 않고 빙빙 돌아가듯 배회하면서 마지막에 알려주는 방식의 글쓰기는 마치 독자들의 머리 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다 아는 듯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는 방식이며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새로운 충격들을 준다. 이제껏 이런 책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주 독특한 방식의 글쓰기로 ‘행동을 변화시키는 글쓰기’라고 이름 붙이고 싶을 정도이다.
<철학자의 신학수업>은 철학자와 신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일상의 삶에서 신학과 철학이 어우러져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고,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진리는 단순하지만 우리의 삶은 애매하다. 그래서 진리에 대한 즉 신학에 대한 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상섭 목사(그 사랑교회), TGC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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