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대표발의를 준비 중인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평등법)에 최근 들어 20여 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교계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 의원의 법안은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 단 1명 외에는 같은 당 의원들이 아무도 동참하지 않아 발의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3월 1일까지 20여 명의 의원을 확보함으로써 법안 공동발의의 법적 요건을 이미 충족했다고 모 일간지가 보도했다.

지난해 12월부터 ‘평등법’을 성안해 발의를 준비해 온 이상민 의원으로서는 이제 첫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그러나 언제 법안을 공식 발의하게 될지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다. 이 의원실에서는 ‘평등법’ 통과를 위해 정치권과 시민사회와 함께 발의 시점을 논의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을 뿐이다.

한교총과 복음법률가회 등은 이 의원이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평등법’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내고 자진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교총은 지난 30일 성명에서 “이상민 의원 법안은 이미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하여 법사위 전문위원 검토에서 ‘부정 및 유보’ 의견으로 그 입법 필요성에 공감을 얻지 못한 ‘차별금지법안’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국교회반동성애교단연합 등 반동성애 연합단체들도 이상민 의원 사무실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고 “이상민 의원이 ‘평등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며, “국민의 입을 막는 독재 평등법을 당장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교계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인 가운데 이상민 의원이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평등법’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다만 시기적으로 여야가 보궐선거에 올인하고 있어 국회가 굳이 기독교계가 반대하는 법안을 무리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도 이 의원의 ‘평등법’ 발의와 관련해 “종교계와도 갈등하고 있는 데다, 4·7 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민감한 시기”라는 점을 들어 당장 입법 추진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21대 국회 들어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아직까지 국회 상임위 소위 문턱도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이를 두고 교계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은 끝났다’는 낙관론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 법안과 민주당 이상민 의원 법안이 병합 심사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이 의원은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요건인 의원 10명을 초과하는 20여 명의 동의를 이미 확보해 놓았다. 그런데도 최대한 더 많은 의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당내 의원들과 법안 논의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법안 통과를 위한 기초를 튼튼히 다지고 있다는 말이다.

민주당은 지난 2013년에도 김한길·최원식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당시에는 공동발의자가 51명이나 되었다. 그럼에도 보수 기독교계의 빗발치는 항의와 반대 여론에 밀려 결국 두 달 만에 입법을 철회했다. 이 의원은 이를 의식해 더 많은 의원들의 참여를 유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의 실패 사례를 거울로 아예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계산일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평등법’이 이미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전혀 다른 법안인 양 혼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평등 및 차별금지법’은 포장만 다를 뿐 내용물은 똑같다고 보면 된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포함해 포괄적인 평등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그렇다. 굳이 차이를 찾으라면 차별금지법에 규정된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장 의원의 법안보다 더 높다는 정도다.

교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아직 상임위 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인 것을 놓고 교계의 적극적인 반대 여론 조성이 결실을 본 것으로 자평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만약 똑같은 법안을 정의당이 아닌 민주당이 주도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분위기 자체가 지금과 180도 달랐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런 징후는 이미 시작됐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평등 및 차별금지법’이 병합이 된다면 그것은 곧 교계가 우려하던 바가 현실로 닥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동성애, 차별금지법과 같은 민감한 사안들은 특히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금기시해 온 주제였다. 종교계와의 갈등 요소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금태섭 두 야권 경선후보 간의 TV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안철수 후보가 “퀴어축제가 반드시 서울의 한복판에서 열릴 필요가 없다고 본다”며 성소수자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이다. 이어 국민의힘 예비후보들도 동감의 뜻을 표하고 나섰다.

여권 후보군에서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는 상태다. 당의 정체성과 표심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기보다 어떻게 하는 게 유리할지 계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선거 후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리라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말이 있다. 정의당이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늘 그렇듯이 방심하는 순간 위기가 그 틈을 파고 든다. 거여의 입법 폭주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을 뿐, 교계는 지금 폭풍 전야의 고요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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