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성이 주 안에서 거듭난 영성에 속하느냐 하는 것이다. 동양적 범신론적 이성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부인하고 신과 자연을 동일시 하지만 이들의 사고가 정통 보수 기독교 신학사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바도 많이 있다... 아름다운 영성
전에 기독교인이 되신 이어령 교수께서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며,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한다"고 했다. 또 “그래서 종교적 현상은 체험할 수 있을 뿐이며 그것이 바로 영성”이라고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초신자분 치고는 과연 석학답게 참으로 가슴이 탁 트이도록 탁월한 혜안이라고 감탄이 되었다... 예수는 휴머니스트인가?
신구약 성경을 읽어도 성령의 터치를 못 받아 말씀이 역동적인 생명의 은혜로 다가오지 않을 때는 누구라도 그 말씀을 통독하기가 너무도 힘들게 된다. 대개의 경우 이럴땐 성경에 대해 타자가 이성적인 언어로 성경을 논한 종교철학적인 책들에게만 정신이 팔리게 된다... 예민한 아저씨와 유대인
언젠가 스타벅스에서 커피에 밀크를 타는 동안이었다. 한 백인 아저씨가 내 옆에 서있기에 평소대로 전도를 했더니 좀 예민한 인상에 걸맞게 피식 웃으면서 떠드는 말이, 자기도 믿고는 싶지만 생각해 보라고…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냐고?… 사람이 상식에 의해서 살아야 되지 않겠냐고? 내게 평소 심중에 삭히던 말을 하듯 호소성 항변을 하.. 보수신학과 해방-민중 신학
요즘 동성애 이슈에 대한 크리스찬 써클 내의 양분된 보이스를 들어보면 분명 같은 동성애를 바라보는 관점인데도 양자가 현저한 상이점을 보이는 양상이다. 이런 차이를 가져오는 요인엔 성경 말씀에 대한 이해도나 깨달음의 정도와 더불어 양자의 신학적인 배경 또한 한 몫을 한다고 생각된다... 일상 셀프 전도(1)
수년 전 당시를 회고해 볼 때 차가 없어진 후 하나님께선 내게 전도의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키신 것 같다. 차가 없으니 동네에선 걸어서 왕복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식품점엘 들려 먹을 것을 사올 수 있었지만 월마트나 병원, 몰 등을 갈 때엔 버스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천사 이야기
비가 올듯 을씨년한 날씨인 오후, 펜스테이션 행의 전철을 탔다. 대개 전철을 타면 나의 전도의 대상자가 될 옆에 앉을 사람을 흘깃 눈여겨 보게되는데 그 날은 그런저런 여유도 없이 그냥 어떤 여성 옆에 앉게 되었다... 진화론자들
수년 전 미국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버스에서 동네 몰앞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줄지어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몇몇 사람들을 눈여겨 보며 혹 전도할 찬스를 찾으며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정류장 바로 앞 잔디 위에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가 앉아 있는게 보였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예의 1분 전도를 했다... 뷰로크라시와 애드호크라시의 조화
오래 전부터 교회생활을 경험하면서 계속 떠나지않고 필자의 머릿속에 머무르는 사고의 단초는 다름아닌 ‘뷰로크라시 영(靈)의 포로’에 관한 것이었다. 현대 사회는 뷰로크라시(bureaucracy)의 유전적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찌기 베버는 근대사회의 효율적인 조직구조를 위해서는 합법적 지배에 입각한 뷰로크라시적 지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영화 <생명나무>
십여년 전 칸 영화제에서 “생명나무(the Tree of Life)”로 Palme d’Or의 최고상을 받은 테렌스 맬릭 감독은 37년간의 영화 제작자 생활 동안 5편의 영화만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또 그 영화들이 명화(masterpiece)로 인정받았을 뿐아니라 정작 감독자신은 인터뷰는 물론 프리미어나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화제이다... 도올은 난독증인가? 공산당인가?
필시, 마커스 보그 같이 마가복음의 역사적 예수를 주장하는 진보신학자의 영향을 받았을 도올은 마가복음이 기록 연대상 가장 신뢰할 만하다고 줄기차게 강조를 하는데 정작 그의 강의를 들어보면 마가복음에 기록된 중요하고도 심플한 핵심적인 말씀에 대해선 계속 부인하는 이상한 증세를 보인다... 생명나무의 지식: 사순절 단상
십년 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인 큰 아들 아이와 차를 타고 오면서 평균 이상의 샤워시간 때문에 약속 시간에 늦어지는 문제로 엄마로서 이런저런 훈계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그 즈음엔 큰 아이와 대화를 시작하면 그전 같지 않게 결론이 부모도 아이들처럼 완전치 않다는 선에서 협상 정도로 마무리 되곤 하기가 일수였는데, 그날 대화 중 새어 나온 아이의 볼멘 듯한 한탄이 유별나게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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