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전국 대학교수들이 한 해를 마감하며 의미하는 사자성어(四子成語)를 뽑아 발표했다. 2020년(경자년)의 사자성어는 “我是他非(아시타비)”다. 그 뜻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이다. 한국 정치권에서 유행했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을 한문(漢文)으로 옮긴 성어(成語)로, 한국사회에서 만들어진 신조어(新造語)다. 우리 사회 분열에는 ‘내 탓’ ‘내 잘못’ ‘내 책임’이라는 자기 성찰을 망각하는 기류가 깔려있다. 저쪽이 잘못이고, 가짜뉴스이고, 거짓말이라는 식의 비방이나 감정 대립의 오만한 언사들로 가득하다.
올 한 해는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 키워드(key word)는 ‘국민통합’일 것이다. 갈라진 민심과 반목, 질시의 분열의 역사를 끝내고 대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분열의 역사가 그렇다. 한국교회의 분열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분열된 역사는 이제 그만하고 한국교회가 하나된 모습이 절실하다.
한국교회에는 소위 ‘연합운동’을 표방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참으로 많다. 그러나 여기서 기존 ‘연합기관’이라 함은 공 교단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를 지칭한다.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결국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그리고 ‘한국교회연합’ 등과 ‘한국교회총연합’에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 4분 5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개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힘을 모아 대신하기 위해 그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이다. 그런데 연합기관이 그 위임받은 힘으로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면 한국교회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 예가 정치권력을 지향하거나 또는 자리를 만들고 자리를 차지하는 일에 관심을 전력투구하는 일이다.
대표적 연합기관은 지난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통해 하나 될 수 있는 모멘텀(momentum)을 가졌지만 결국 ‘밥그릇 지키기’에 따라 실기하고 지난 14년간 금권선거와 타락선거 등으로 얼룩져 쪼개졌고, 보수와 진보는 균형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를 헐뜯는 소모전을 치러 왔다. 이젠 무기력하다 못해 포기 상황이다.
분열은 불행이다. 지난 130여 년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연합하지 못하고, 분열하는 영적 미숙은 여전히 교회가 풀어가야 할 오랜 과제이다. 이 사회의 도덕적 해이 못지않게 교회의 분열로 나타난 영적 해이와 일탈은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의 영적 침체와 타락의 책임도 통감하게 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소위 ‘한기총’과 한기총의 분열로 생겨난 한국교회연합 즉 ‘한교연’ 등 모두가 대표성을 주장하지만 역사에 걸맞게 어느 단체도 전적인 권한을 갖지 못하므로 ’대표 기구‘가 아니라 ’대표적 연합기구‘라고 불리고 있다.
2006년까지는 그래도 보수를 대변하는 ‘한기총’과 진보를 대변하는 ‘교회협’은 나름 존재에 대한 명분을 지니고 있었다. 서로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기독교의 다양성을 담아내기도 하였지만 한기총이 2012년 한교연으로 분열되면서 그 색깔도 드러내지 못하고 분열의 상처만 간직하고 있다. 2012년 이후 한기총과 한교연이 ‘보수’라는 간판 아래 두집 살림을 하고, 교회협도 최근까지 에큐메니칼 정신의 실종으로 도덕성에 큰 흠집을 가져왔다. 2006년 한기총과 교회협이 통합하기로 하여 정관까지 만들었지만, 결국 각 기관의 밥그릇 챙기기에 밀려 출범하지 못해 14년이라는 허송세월을 보내며 분열은 지속됐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한국교회의 현실을 미리 아셨을까? 최후의 만찬을 하신 후 드린 마지막 기도에서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라고 하셨다. 한국교회에 주님의 기도와 당부는 아직도 유효한가?
갈등과 분열의 역사 속에서 다름보다 같음을, 분열보다 화해를 추구했던 교회의 일치와 연합운동이 있었기에 2천년 역사는 그 흐름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지금도 믿고 있는가?
지금 한국교회는 참담하다. 이 막막한 현실을 타개하는 방법 중 하나가 ‘하나 됨’이다. 분열의 주된 원인은 상대를 동동하게 대하지 않은 갑질이다. ‘나는 갑이고, 너는 을’이라는 잠재의식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무조건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독선과 아집으로 편가르기를 해선 안된다. 분열의 악순환으로 더 이상 역사 앞에 부끄러움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계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기도하며 연합운동의 새 장을 열기위해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하겠다.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예배조차 맘대로 드리지 못하는 한국교회가 그렇게 한가한 상황인가. 강도 만난 사마리아인 된 지경에서 식구들끼리 책임전가하며 싸울 때인가. 연합기구들이 정치적 분열로 인하여 갈등의 정점에 서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문제에 책임 있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도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피와 땀을 흘려야할 상황이다. 연합운동은 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안티세력으로부터 교회를 방어하는 영적 전진기지로서 그 역할이 막중하다. 현실은 그 역할에 맞는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영적 부흥도, 사회의 도덕적 변화도 우리 손에 있음을 알면서도 연합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워 해야 한다.
2021년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그래야 민족과 역사도 살릴 수 있다. 윤동주시인이 말한 것처럼 이 시대의 희망이 교회의 십자가에 걸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새해가 되면 덕담 겸 인사로 “새해에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필자는 개인적 꿈이 아닌 공적인 꿈으로서의 ‘하나 된 한국교회’라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새해에 연합기관의 통합은 정말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든다. 명분에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지만 실제적으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연합기관이 대통합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합기관 지도자들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결자해지’와 ‘십자가’를 지겠다는 정신으로만 가능할 것 같다. 말로만 ‘연합’과 ‘에큐메니컬’을 논 할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진정성 있게 구현하며 하나 됨을 실천으로 보여줄 시험대에 서 있다. 분열과 대립의 길을 걸어온 연합기관 지도자들이 이제는 서로의 손을 잡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미스바로 모여 하나 되어야 할 절호의 기회다. “이대로,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생각과 자신들이 가진 철밥통을 내려놓는 결단에서 시작된다.
코로나 정국, 안티기독교세력과 이에 따른 여러 정책 앞에서 한국교회는 심각한 리더십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도자들의 대 사회적 영향력이 점점 사라지고, 사회에 영향력은 잃어가고, 병든 시대를 고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영적 감화력도 떨어지고 있다. 교회는 존경받는 지도자를 세워 교회가 대사회적 지도력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대한 새로운 지도력을 요구하는 2021년 새해, 분열과 갈등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열어 갈 수 없다. 세속과 역사의 현장에서 비겁하게 그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들로는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2021년 하나 된 한국교회를 꿈꾸며, 하나의 단일 개신교단으로 ‘대한예수교’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했던 역사적 경험에서 일치와 연합운동의 지혜를 찾을 필요가 있다. 1906년 여름, ‘하나 된’ 교회가 세워지기를 사모했던 조선의 기독인들이 드렸던 기도는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주의 셩신이 전능하신 권력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식히샤 어렵다 하난 생각은 다 없시하여 주시옵기를 구쥬님과 아버지끠서 하나히 되신 것 갓치 우리 교회도 하나히 되기를 간구하옵시다.”
이효상 원장(칼럼니스트, 한국교회건강연구원, 근대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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