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수면제로 알려진 졸피뎀을 여성에게 투약 시 권고량의 절반으로 감량해야 한다고 공표했다. 이는 여성에게 유독 졸피뎀 관련 부작용이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밤에 졸피뎀 복용 후 아침에 출근 시 운전 중 가수면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일으키거나, 낮 시간에 주의집중장애가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이 유독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제보가 쏟아졌다. 이후 후속 연구를 통해 여성에게서 졸피뎀의 약물 대사가 남성과 비교해서 천천히 일어나는 것을 밝혀냈다.
이미 미국에서는 1997년~2000년 사이에 10종의 의약품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서 회수된 일이 있었다. 이때 회수된 10종중에서 8종이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원인은 약물의 배설 과정이 여성에게서 보다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이후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부터 수컷 쥐를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 되었고, 임상시험도 남성을 주 대상으로 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여성의 경우 폐경과 월경 주기에 따른 여성 호르몬의 변화는 연구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를 정확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기에 임상시험에 여성을 배제한다는 제약회사들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서도 남녀 차이가 발생한다. 골다공증은 일반적으로 폐경 후 여성에서 발병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골다공증으로 인한 고관절 골절 환자의 1/3을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상당수의 남성 골다공증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협심증, 심근경색 같은 허혈성 심장질환은 미국에서 여성 사망원인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심장질환에 대한 병태 생리학 연구가 남성을 기반으로 수행 되었기에 진료 지침 또한 남성 위주로 되어있다. 예를 들어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의 증상 중 메스꺼움, 턱 통증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더 많이 관찰 된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여성에게서 종종 진단이 지연되거나, 치료시기를 놓치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생물학적 남녀 간에 존재하는 의학적 차이를 연구 하는 성차의학(Sex specific medicine)이 최근 크게 발전하고 있다. 성차의학의 목표는 남녀간의 병리 및 약리 기전, 질병 특성의 차이를 밝혀 임상에서 최적화된 예방, 진단,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데 있다. 의학에서 남녀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X와 Y 염색체의 차이에 기인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Y 염색체의 유무에 따라 남녀 차이가 결정된다. 또한 성호르몬, 혈액, 근육량, 피하지방의 분포의 차이로 인해 치료에 대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젠더(gender)라는 용어는 1950년대 심리학자 존 머니가, 성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실험 사례를 발표하면서, ‘양육과 교육을 통해 성 정체성이 결정된다.’ 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하였다. 이후 머니의 ‘젠더 실험 사례‘는 거짓으로 판명 났지만, 언론과 지식층들은 젠더의 개념을 잘 모른 채 젠더라는 용어에 몰입되고 있었다. 이들의 무비판적인 수용으로 젠더이데올로기는 사회, 문화등 모든 영역을 점령해 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젠더가 마침내 의학계로 침투하게 된다. 이게 바로 젠더의학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론다 슈빙어 교수는 젠더의학의 도입을 위해 젠더혁신이라는 전략을 세웠고, 이를 UN, WHO, 기타 NGO 국제단체, 학술 단체는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젠더혁신 전략에 따라 연구 현장과 의사결정기구에서 여성의 기용을 늘리고 있고, 젠더 평등에 장애가 되는 조직문화, 제도를 전부 바꾸고 있다. 최근 1700억 유로(한화 230조)의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EU의 Horizon 2020 사업에서는 연구비 심사 시 젠더 연구 방법을 필수 사항으로 채택하고 있다. 결국 젠더라는 가면을 쓴 새로운 정책과 연구 결과물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젠더에 따른 연구 결과’라고 발표된 논문을 찾아 보면, 젠더를 생물학적 성(Male, Female)으로만 구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젠더가 심리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 올 수 없다는 반증이다. 젠더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따라 변하는 허상 같은 개념이고 정의도 모호하다. 의학적 차이는 젠더가 아닌 X, Y 염색체에 기반한 생물학적 성에 의해서만 도출된다. 젠더에 따른 의학적 차이가 발생하여도 이는 성 정체성 혼란에서 유발되는 정신질환문제, 비정상적인 성행위에서 오는 건강상의 문제, 위험행동(음주, 흡연) 등 에서 찾아야 한다.
의학에서 남녀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남녀 차이에 관련된 의학을 성차의학으로 부르고, 실제 의료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성혁명 사상에 오염된 젠더의학 에서는 남녀 이외 트랜스젠더, 성전환자, 수많은 종류의 젠더퀴어, 그리고 간성 까지 정상으로 인정하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객관적인 과학의 영역이 아닌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하다. 따라서 우리는 젠더의학이 아닌 성차의학이라고 불러야 한다.
고두현(내과의사, 한국성과학연구협회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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