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원로)가 지난 2000년 2월 13일부터 사랑의교회에서 한 ‘산상수훈 설교 시리즈’를 차례로 소개한다. 아래는 시리즈의 첫 번째 설교 ‘하나님의 행복일기’(마 5:1-12)를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옥 목사는 “예수님께 몰려들던 사람은 대부분 병자, 귀신 들린자, 외로운 자, 가난한 자, 죄인들이었다.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자들이자 소망 없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갈릴리 바다가 보이는 동산에서 말씀을 선포하셨다”며 “오늘 본문 말씀은 팔복이다. 예수님의 성품이자 그를 따라는 제자들이 갖춰야할 성품”이라고 했다.
그는 “팔복은 예수님의 초상화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팔복의 내용을 음미하면 예수님의 초상화를 보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모습엔 심령의 가난함이 있다. 애통함이 있다. 온유함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다. 예수님의 그 얼굴엔 화평이 있고 의를 위해 핍박받은 흔적이 있다. 예수님의 초상화를 엿볼 수 있다”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돼야 한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진정한 구원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막연히 천당 가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건 예수님을 따르는 자요,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요, 결국엔 예수님처럼 똑같은 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도 팔복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기를 바란다. 이 말씀이 나의 성품에 뿌려진 씨앗이 돼서 나로 하여금 주님을 닮아가는 작업을 할 것”이라며 “또 한 가지, 팔복은 예수님 자신이 누리던 행복을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한데 너희도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따뜻함이 팔복에 담겨있다”고 했다.
옥 목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는 감탄사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행복이여!’ ‘온유한 자들의 행복이여!’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의 행복이여!’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심령이 가난하면 얼마나 행복한지 아니? 화평케 하는 생활을 하면 얼마나 행복한지 아니?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단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며 “여기서 ‘복이 있나니’는 헬라어로 ‘마카리오스’다. 이 말은 사람들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복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했다.
그는 “이 행복은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이 누리던 행복을 의미 한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너무도 어렵고 고통스런 생을 사셨다. 그 만큼 가난한 분이 없었고, 핍박받고 고통을 체험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 고난 속에서도 주님이 잃어버리지 않은 건 심령의 행복”이라며 “우리가 이 행복을 소유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가 될 것이다. 사실 가난함에도 행복하다면 이 행복을 누가 앗아가겠나?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면서 애통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사람의 행복을 누가 빼앗아 가겠나? 이 세상은 큰 소리쳐야 이긴다. 온유하면 손해 본다. 그러나 온유함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이 행복을 빼앗아가겠나? 못 빼앗아간다”고 했다.
특히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누리신 행복을 친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다고 나왔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세상에 불행을 원하는 사람이 있던가?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도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 분은 좋으신 아버지시니까”라며 “많은 사람들도 행복을 위해서 산다. 이건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문제다.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이 틀렸다.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 잘못됐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은 밖에서 행복을 찾는다. 자기 밖에 있는 무언가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먹고 마시는 것, 섹스, 돈, 명예 등 이런 것을 손에 넣고 소유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를 쓰고 살아간다. 그러나 행복의 길을 잘못 들었다. 이것들이 결코 행복을 안겨줬다고 고백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솔로몬까지도 그랬다”며 “만일 이것들이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선진국 사람들이 무릉도원에서 인생을 정말로 구가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선진국일수록 왜 자살률이 높은가? 왜 저녁이면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드는 사람이 3명 중 1명꼴로 많은가? 이유가 뭔가? 자기가 원하는 걸 손에 넣어도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웅변적 증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죄는 우리 눈을 가리고 우리를 속인다. 죄는 행복을 주지만 일시적인 행복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하는 건 쾌락, 재물, 명예, 권력도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헛되다’로 귀착된다. 세상을 바라보고 행복을 추구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라며 “예수님은 진정한 행복의 길이 어딘가를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기를 원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행복의 원천이 되신다. 행복의 원천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했다.
특히 “그분은 권위 있게 말씀하신다. ‘행복은 밖에 있는 게 아니야. 행복은 내게 있는 거야. 그러므로 내가 다스리는 너희 마음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행복을 찾는 길은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며 “팔복은 행복이 소유로 만족하는데 있지 않고 예수님처럼 심령이 가난한데 있다고 말한다. 행복은 웃고 즐기는데 있지 않다. 예수님처럼 애통하는데 있다고 한다. 강한데 있지 않고 온유한데 있다고 한다. 행복은 욕망을 충족시키기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데 있다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그는 “우리도 이런 행복을 소유할 수 있다. 그래서 울면서도, 가난하면서도, 실패자이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또 부유하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 헛된 걸 놓고 시간낭비하지 말고 정욕 소비하지 말라. 예수님을 마음에 두고 그분처럼 되려고 노력하라”며 “세상적 조건을 보면 행복할 수 없지만 세상이 앗아가지 못할 행복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다. 이는 행복의 원천되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그분을 배울 때 가능하다. 집에 가서 팔복을 묵상하라. 예수님이 그러하셨다면 나도 이러해야지. 간절함을 갖고 예수님을 닮기를 기도하라. 그러면 팔복이 나의 품성으로 자리할 것이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악을 쓰는 세상에서 내가 온유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악착같이 모아보겠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가진 게 없어도 전혀 부러울 것 없는 만족이 내게 있다면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나보다 앞서 달려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떼를 이루지만 내가 비록 뒤쳐졌다고 해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정으로 내 마음에 신비스런 행복이 자리한다면 세상에서 이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는가? 우리 모두에게 이 행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용은 故 옥한흠 목사의 홈페이지에 실린 설교 녹취록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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