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너무 일찍 예수님을 알게 되어서 아쉬워하면서 흔히들 생각하기를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그게 가장 지혜로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대부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좋은 모델로서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회개하고 구원받은 강도를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구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원을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이란 언젠가 미래의 복락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아온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현재적으로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비유가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이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이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오랫동안 분리되어 있다가 열매 맺기 직전에 붙으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한순간도 떨어져 있으면 안 되는 관계이다. 가지는 포도나무와 분리되어 있으면 그것 자체가 죽음이다. 그리고 포도나무 되신 주님과 나의 관계의 회복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주님과의 관계회복은 나에게 생명을 준다. 또한 가지로서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한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가지는 나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내적 교통을 이루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가지는 나무로부터 양분과 수분을 지속적으로 빨아들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럴 때 가지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열매를 맺어야 한다. 아름다운 인생의 열매를 성경에서는 성령의 열매라고 부른다. 갈라디아서 5:22,23절을 보면 성령의 열매들이 열거되어 있다. 또한 생명의 열매, 전도의 열매도 있다. 이런 열매를 맺으려면 결국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일찍 예수님을 알수록 좋은 것이다. 아니 일찍 알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을 나의 참 포도나무로 확신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다. 왜 인가? 정말 내가 나의 삶의 포도나무로 확신하는 게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물론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십자가상의 강도처럼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그 몇 시간 동안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할 수도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했으리라.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누구를 알고 정말 그분에 대해서 확신할 때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영생 주는 나의 그리스도로 확신하는 데 그게 그리 즉흥적으로 감정적으로 결정할 문제인가?
그래서 성경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바울로부터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들었을 때 정말 그러한가 하여 구약성경을 자세히 고찰했다고 되어 있지 않는가?(행 17:11) 사도바울도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주님의 빛 앞에 눈이 멀고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하고 삶이 달라졌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나니아 라는 제자를 만나서 섬김을 받는다. 그 후 아라비아로 가서 3년 동안 정말 예수님이 구약성경이 약속한 그리스도가 맞는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확신하는 기간이 필요했다(갈 1:17,18)
내가 신앙생활 해보니 정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확신하고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성령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맺는 데는 많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젊은 날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되었다. 내가 십자가상의 강도처럼 죽기 직전에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한 모험인가? 그때 주님을 못 만난다면? 그리고 만났다 하더라도 주님을 만나고 동행하면서 수많은 아름다운 추억과 신앙적 열매들을 맺는 경험과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가 만약 이 땅에서 젊은 날부터 예수님을 만나 그와 동고동락하는 삶을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을 뵈면, 주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날까지 혹은 그 날 아침까지 함께 했던 주님을 단지 하늘나라에서 뵈온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예수님을 자신의 포도나무로 제대로 만난 사람이라면, 왜 내가 이리 젊은 나이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가 손해의식을 가질 수 없다. 그는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이다. 예수님과의 교제가 얼마나 의미 있고 가치 있고 기쁨을 주는지를, 얼마나 멋지고 삶의 열매를 맺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독청년이여, 당신이 젊었을 때 예수님을 만난 것은 그냥 최고다! 최고의 감사와 기쁨과 자부심으로 기독청년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기독청년, 파이팅~
김갈렙 목사(UBF 세계선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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