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 의하면 우주는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한다. 또한 무한한 우주의 핵심은 인간이라는 것이 성서의 교훈이요 희랍 철학의 중심 사상이다. 우주는 인간의 경험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무한대의 세계이다. 그 우주를 축소해 놓은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을 일컬어 ‘소우주’라고 ’라고 한다.
소우주는 무엇을 의미하나?
1. 평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다면 도대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자기의 실상을 거울을 통해서 본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도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이 거울에 대해서 이사야는 오래전에 말하였다. 법은 하나님의 척도요 거울이다(사 28:7).
이 법에 대해서 잠언 17:1~5절을 살펴보자.
(1) 평화
“집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다투는 것보다 누룽지를 먹어도 마음 편한 것이 낳다”(잠 17:1) 이 말씀은 물질적인 풍요를 다 갖추어 놓고도 싸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난하게 살면서도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낳다는 말이다.
얼마 전 일간 신문 보도에 의하면 로또 1등 당선자가 거금을 손에 쥐게 되자 수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교만해져서 사소한 일로 부부간에 말다툼이 일어났고 결국 아내를 망치로 때리며 폭행하므로 아내가 그 망치를 빼앗아 남편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과 그 역사의 진보는 경제적인 풍요나 발달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마 5:9).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는 법칙은 평화이지 경쟁이나 투쟁이 아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들 가정은 힘이나 싸움으로가 아니라 평화의 도구가 됨으로써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는 하나님의 법칙이다.
(2) 지혜
“슬기로운 종은 주인집 아들을 다스리고 그 아들과 함께 유산을 나누어 받는다”(잠 17:2). 우리나라로 치면 종은 머슴이요 주인집 아들은 도련님이다. 두 사람 사이엔 현격한 신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방탕한 아들은 머슴의 영향과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요즘은 옛날에 비하면 좋은 세상이 되었다. 전에는 왕이라 해도 말을 타고 다녔을 뿐이요 요즘처럼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내 주인의 때가 지나고 방탕한 아들의 시대가 오면 주인의 유산을 방탕한 아들과 그 슬기로운 종이 나누어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인생을 가장 영화롭게 살았던 솔로몬의 이름으로 된 잠언은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국민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가 예배를 등한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인간의 역사는 계층이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나 가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함양한 지혜와 총명에 의해서 발전되고 계승되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데서 온다.
2. 긍휼
”나쁜 사람은 심술궂은 소리에 솔깃하고 거짓말쟁이는 모함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가난한 사람을 조롱함은 그를 지으신 이를 모욕함이다”(잠언 17:4~5)
간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동정심이라 했다. 칼이 무서워서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 사람의 슬픔과 외로움과 아픔에 동행하는 동정심이다.
오늘 본문 24~26절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법칙이 나와 있다. 이 예수님의 법을 잘 따라가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높임을 받고 귀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다.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선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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