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은 아브라함 때문에 복을 받은 인물이었다. 롯은 부친을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 데라의 손에서 성장하였다. 데라마저 세상을 떠나자 아브라함이 삼촌으로서 후견인이 되어 그를 보살펴주었다. 롯은 비록 아브라함의 직계 가족은 아니었지만, 아브라함의 부름에 동참하여 가나안으로 함께 이주하였다. 아브라함이 롯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온 것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난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였다.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는 단순히 생활 중심권을 옮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 속에서 진행된 거룩한 이동이었다. 아브라함한과 함께 한 롯은 자연히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영적 복은 삶의 복을 동반하게 된다.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은 물질적으로도 큰 복을 받았다. 그런 복은 롯에게도 주어졌다. 아브라함의 재산이 많아진 것처럼 롯의 재산도 많아졌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재산의 증가로 두 가정이 더 이상 같은 지역에서 지낼 수 없었다. 많아진 짐승들에게 먹일 물이 부족하게 되자 두 집 목자들 사이에서는 물 확보를 놓고 자주 다툼이 일어났다. 그런 일을 계기로 아브라함은 롯과 분가할 것을 결정했다.
롯은 아브라함이 넘겨준 우선 선택권을 갖고 먼저 자신이 살아갈 지역을 정하였다. 그곳은 물이 풍부한 요단들 곧 소돔과 고모라가 위치한 도시지역이었다. 그의 선택은 하나님 중심적이기 보다는 인간 중심적이고 외형에 치중된 세속적 기준이었다.(창 13:10) 그가 선택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1) 롯이 바라본 그곳은 물이 넉넉한 땅이었다. 가나안은 항상 물이 부족한 지역이다. 주변이 사막이고, 일년 중 비가 오는 기간은 4-5개월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건조한 날씨가 계속된다. 사람들은 자연히 물이 넉넉한 곳을 선호했다. 롯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물이 넉넉한 지역을 선택하였다.
(2) 롯은 자기가 선택한 곳을 여호와의 동산과 같다고 평가했다.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지역의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물이 넉넉한 요단들을 선택한 롯의 관심은 자연스럽고 지혜롭게 보인다. 그런데 물이 넉넉하고 풍요로워 보인다고 해서 그곳을 여호와의 동산으로 판단한 것은 가치관의 착각이다. 눈에 보이는 풍요에만 최고의 가치를 둔 물질지상주의적 자세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여호와의 동산인 에덴동산도 물이 풍부한 곳이다. 그곳에 발원한 물 근원은 네 개의 강을 이루고 흐를 만큼 수원이 풍부하였다. 그러나 그곳은 눈에 보이는 강물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풍요가 넘치는 곳이었다. 롯은 외형적인 풍요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 없이 타락한 도시지역을 여호와의 동산으로 여겼다.
(3) 롯은 소돔지역을 여호와의 동산으로 착각했을 뿐 아니라 여호와의 동산을 이집트 땅과 동일시하였다. 천혜의 나일강을 가지고 있던 이집트는 여호와의 동산처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도 그곳은 하나님 약속과 상관이 없는 땅이며 바로가 신격화되어 숭배되는 우상의 중심지였다. 롯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소돔과 고무라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직전의 타락한 땅이었다. 멸망 직전의 그 땅은 외형적으로 매우 화려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타락이 극에 달하여 온통 썩은 곳이 가득한 곳이었다. 롯은 외형에 치우친 나머지 내부의 타락과 부패, 그로 인하여 닥쳐올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보지 못했다.
롯의 세속성에 비하여 아브라함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집트에서의 뼈아픈 실패를 교훈삼아 건전한 신앙과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였다. 이집트에서의 실패 경험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기준에 근거하여 살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뜻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였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변화된 삶과 가치관은 롯과 분가할 때 우선권을 롯에게 양보한 것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노력으로 발버둥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더 중요시 여기는 신앙적의 자세를 보였다. 당시는 철저한 가부장적 사회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가장으로서 모든 일에 우선권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우선선택권을 스스로 포기했다.
아브라함은 약속한 대로 롯과 헤어진 후 반대편 지역인 유다산지의 헤브론에 정착하였다. 헤브론은 외형적으로 요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척박한 산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종과 횡으로 그 땅을 다녀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모든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비록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은 지역을 선택했지만 믿음으로 산 아브라함은 4000년이 지난 지금도 온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복의 근원으로 남아 있다. 좁은 안목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선택은 매우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선택하였다. 그것이 신앙인으로서 그의 성숙한 모습이다. (계속)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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