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동성 선배를 향한 애틋한 감정으로 고민하는 남자 주인공의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이에 담당 PD는 청소년 시절 동성애와 우정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의 현실을 다루고 싶었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처럼 실제로 청소년 시기에는 동성애 감정과 우정을 구분하지 못하고, 내가 동성애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와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사례를 쉽게 접하게 된다.
우정이란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 애정을 가진 관계를 말하며 여기에는 공감, 이타심, 상호이해와 동정심, 신뢰, 존경, 그리고 연대가 기초가 된다. 또한 함께 있는 것을 즐기고 서로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실수를 해도 상대방의 판단이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특징들이 있다.
어린이는 자라면서 특별한 친밀감을 갖는 서너 명 혹은 단짝 친구가 생기게 되는데, 이는 ‘우정’의 관계로서, 어느 정도 배타적이고 독점적이며 또 이타적, 희생적, 헌신적인 사랑이다. 인간은 생애주기(life cycle)에서 이러한 ‘우정’의 시기를 통해 친밀감, 상대방을 위한 자발적인 희생과 헌신의 감정과 의지를 경험하면서 사회적 인간으로 성숙해 간다. 이런 친구관계는 취업과 결혼이라는 인생의 단계를 거치면서 그 농도가 옅어지고 잠시 소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녀들이 성장하고 직장에서도 은퇴하여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어려서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들이 다시 빈번히 만나 같이 활동을 함께하면서 우정을 지속해 나가는 모습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즉 우정은 인생에서 소중하다. 심지어 부부도 나이 들면 우정으로 살아간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 시기에 우정을 동성애로 오해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나 우정과 동성애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정은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사랑의 감정이다. 하지만 동성애는 동성 간에 사랑(우정)이 있든 없든 성적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성적 관계란 성적 흥분(발기), 성적 행위를 말한다. 동성애적 성행위에는 동성 간에 성적 애무, 상호자위, 구강성교(키스), 항문성교 등을 행하는 것이다. 동성을 향한 친밀한 감정에 이런 성적인 것이 개입되지 않으면 동성애가 아니다.
남자들끼리의 소위 브로맨스(bromans, 브라더와 로맨스의 합성어)는 유별나게 가까운 두 남자의 친밀한 관계가 남녀 간 커플처럼 보일 때를 말한다.(한글신조어사전,2016) 그러나 여기에 위에서 말한 성적 행위가 없으면 동성애가 아니다.
청소년들은 모험적으로 여러 행태의 성행동을 시도 할 수 있다. 장난으로도 동성애적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런 동성애적 행동이나 느낌은 시간이 지나거나, 자극이 차단되면 자연히 소멸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동성애자로 굳어질 수도 있다. 청소년기에 정체성 혼란으로 상당수 청소년들이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일시적이며 18세를 넘기면서 거의 대부분 이성애자로 정리된다(동성애자로 남는 사람은 인구의 2-4% 내외이다. 이들 중에도 더 나이 들면 또 이성애자나 양성애자로 바뀐다).
UNESCO 성교육 지침서에 “우정이 성적 관계로 변하는 경우”에 대해, 이성 간에 이런 관계가 형성 되면 이성애이고, 동성 간에 발생하면 동성애라고 가르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마치 우정이 동성애로 이어지는 중간단계처럼 설명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생각이며 이렇게 가르쳐져서는 안 된다. 정신적 우정(사랑)과 생물학적 섹스는 차원이 다르다.
성경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 하였도다 (사무엘하 1:26)” 라고 묘사하며 남성간의 깊은 우정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다. 이를 동성애라고 설명하면 안 된다.
따라서 어려서의 우정의 행동이 동성애로 오해되지 않도록 예방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이때 청소년의 멘토가 동성애자이거나 동성애 옹호자라면 멘티를 동성애로 인도할 위험성이 크다. 불행히도 현재 교육 현장에서 간간히 교사나 체육코치, 상담교사들 중 동성애 옹호성향을 갖고 있거나 동성애자가 있음이 발견되어 상당히 우려스럽다. 심지어 신부나 개신교 내 교역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우정은 자연스럽고, 긍정적이고, 성경적인 것이다. 우정은 동성애와 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과 지도자들에게도 확실히 알게 해야 한다. 우정에 동성애 프레임을 씌우는 왜곡된 성교육이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지 철저히 감시하고, 이를 방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두현(의사,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학술연구팀장, 회복의교회 안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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