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따라 매년 3가지 절기를 지켜 왔습니다.
이 시간 절기의 참 의미와 뜻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장막절은 추수 감사절로서 일 년 곡식을 거두어 곡간에 드린 후 매년 세 가지 절기를 지켜 왔습니다.(출23:14 신16:16) 유월절 또는 무교절은 유대 민족의 광복절로서 출애굽의 구원의 감사를 드리는 절기이고 맥추절 또는 오순절은 유월절을 지나 50일째 되는 날 드리는 절기이며 초막절은 일 년 곡식을 거두 워 곡간에 모은 후 드리는 절기입니다. 이러한 절기 때만 되면 각처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도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장막을 치고 찬송을 부르며 일주일간 광야에서 목자 되신 여호와의 인도와 보호에 감사하는 절기로 지켰습니다. 이 때에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매일 아침 흰 예복을 입고 긴 행렬을 지어 12:3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성전을 떠나 실로암 못으로 가서 각 각 준비한 물병에 맑은 물을 담아 가지고와 제단에 부으며 과거 사막에서 물이 없어 목마른 때 반석에서 샘이 나게 하여 물을 마시게 하신 여호와께 감사하는 절기로도 지켰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의 불신앙을 보게 됩니다. 먼저 육신의 형제들의 불신앙입니다.(1-9)그들은 지금 예수님께 대하여 어디까지나 세속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에 나 타 내소서.”(4)라고 권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고자 했습니다.
겉으로 예수님을 위하는 것 같으나 중심으로 믿지 아니 하였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함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7)고 증거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형제들은 세속주의의 대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고 하십니다(약4:4).
세상을 두려워함으로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10_13)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 중에 혹은 좋은 사람이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11)하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는 수근거리며 혹은 좋은 사람이라 ...(12)하면서도 유대인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믿는 자가 없더라. (13)고 합니다.
신앙 문제에 대하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10:32)하셨고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4-24) 주님은 지금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믿음이 없고 순종이 없으므로 믿을 수 없는 자들 이라고 하셨습니다. 곧 믿음으로 시인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신앙이 구원의 첩경임을 계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14-24)
주님은 지금 인생에게 참된 초막절의 의미를 깨우쳐 주십니다. (신18:15,18).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랑과 순종의 마음이 없어 믿지 아니합니다.
외식과 형식은 스스로 자신을 자랑하고 증오와 시기심으로 가득 찬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했습니다. (31-52) 이 같은 자들을 두고 “천지의 주재 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자들 에게는 (26_27)숨기시고 어린 아이들 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 (마11:25)하셨고 바른 믿음을 고백하는 베드로를 칭찬하셨으며 유대 인들은 책망하셨습니다(31-52)
이때 유대인의 지도자 들인 바리새인과 대제사장 들은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31)따름에 대하여 시기와 미움으로 하속들을 보내어 (32)예수님을 잡으려 한 것입니다.
광야 인생의 참상 어떠합니까? 르비딤 광야에서 물이 없어 목말라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반석을 치게 하사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신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영혼의 갈 함을 채우지 못합니다.
광야는 생명이 살기 어려운 곳입니다. 혹 나무나 풀이 있다 해도 가까이가면 상처를 주는 거칠고 돌 같은 수목들이 있고 때때로 바람이 불면 모래를 휘날려 길을 메 꾸어 버려 미로에 방황하게도 됩니다. 사실 인생 광야는 인생들이 서로 만나 교제하면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면 결국 서로 상처를 받는 가운데 청춘은 사라져가고 기력은 쇠하여 지고 머리에는 서릿발이 내려 환멸과 탄식의 인생이 저물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 생수를 주시는 주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지금 유대인의 명절이 끝나려는 큰 날 무리를 향하여 “내 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37) 주님은 곧 생수의 근원이시이요 반석 이십니다.
그에게는 은혜와 진리 (요1:14)생명과 성령이 충만하십니다.
곤비하고 기갈에 찬 오늘 수많은 인생들이 웅덩이 물 같은 세상 오락과 향락의 물을 찾아 갈 함을 면코자 하나 불가능하고 오직 생수의 근원이시며 반석이시고 초막절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께 나와 그를 믿을 때 갈 함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물은 세 가지 작용을 합니다.
요한복음 3:5절 말씀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물이란 생명체의 원천으로 사실 모든 물질 중 단순한 H2O의 불변의 화학 구조입니다.
영적 생명도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단순하고 불변하는 원칙을 보이시는데 사실 믿음의 자궁 속에 예수의 씨를 심어 성령으로 태어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다시 생수의 말씀이 나오는데(13-14) 이는 약속하신 성령을 통하여 생동 력 있고 양심과 진리를 아는 지식과 재능에 능력을 얻어서 넘쳐흘러 진리와 사랑의 생명 강을 이루어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기쁨과 위로와 힘을 주어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수는 오염되지 않은 물입니다
생수는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되지 않은 물로 병균이 없습니다.
그 물맛이 시원하고 어떤 이물질도 섞이지 않은 물입니다.
성령께서는 생수로서 우리 심령에 역사하십니다. 영혼의 목이 갈 한 사람에게 생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생수는 다함이 없는 물입니다. 이는 물의 근원이 보통의 샘물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샘물은 날이 가물면 마릅니다. 물이 한정되어 있어서 몇 사람만 떠가고 나면 바닥이 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물은 다함이 없으며 마름이 없습니다.
아무리 날씨가 가물어도 결코 마르지 아니합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생수는 흐르는 부근을 소생시키고 땅을 부드럽게 하여 줍니다.
사람의 마음 이란 원래 사막과 같습니다.
타락한 이후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성령께서 성도의 마음속에 강림하시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되니 자연히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물을 마시고 나면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라고 말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같은 참 초막절을 체험하여 신앙과 행실에서 사람에게 아름다운 영향을 주는 성도가 됩시다. 참 초막절은 목자 되시고 빛 되시고 생수가 되신 여호와 우리 주 예수님 이십니다.
세상은 믿음이 없고 폐역 합니다. 그런데 생수가 흐르면 그때부터 굳어 있던 땅이 점점 부드러워집니다. 그 후에는 생물도 자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원래는 딱딱하기 짝이 없던 사람이라도 성령께서 그 사람마음 속에 역사하시면 그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좋은 열매를 맺기에 합당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은혜를 더 많이 받아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순수한 사랑 순수한 기쁨 순수한 평화의 강줄기가 흘러 넘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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