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미국의 감리교 여성신학자요 드류대학교(Drew University) 교수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는 포스트페미니즘 논의에서 이를 과정신학적 차원으로 발전시키면서 트랜스페미니즘(transfeminism)을 제창하고 있다. 켈러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는 트랜스페미니즘은 이미 유행하고 있는 용어라기보다는 기존의 페미니즘과 포스트페미니즘 담론들 사이에 야기되고 있는 내적 긴장과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적 전략 모색이라고 볼 수 있다.
I. 버틀러의 젠더주의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연결시키는 제3세대 페미니즘: 남성과 여성의 존재론적 상호얽힘 주장으로 전통적인 양성(兩性) 구조 허물어뜨림.
1. 트랜스페미니즘은 페미니즘과 포스트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한 대안적 사유로서 급진적 사상
트랜스페미니즘은 차별받고 억압받는 '여성'을 해방의 주체로 세우려는 페미니즘(feminism)의 정신을 다시금 강조함과 동시에 '여성'(women)들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들을 함께 품고 나아가야 한다는 포스트페미니즘(postfeminism)의 강조점을 인정한다. 트랜스페미니즘은 다양한 소수자들과 주변화 된 사람들과의 연대를 하면서도, 여전히 여성억압의 현실을 망각하지 않는다. 현재 트랜스페미니즘은 바로 페미니즘과 포스트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한 문제인식이며, 이에 대한 대안적 사유를 도모하는 중이다.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가 제안하는 트랜스페미니즘(transfeminism)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사회학적으로 규정한 젠더 개념을 포괄하면서 퀴어이론과 연결되며, 해방신학을 수용하면서 모든 사회적 약자와 피억압자의 연대를 추구한다. 이 점에 있어서 그녀의 트랜스페미니즘은 성소수자(LGBT)를 포함하면서 더 나아가 동식물을 포함하여 전 지구 생태계의 해방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켈러의 트랜스페미니즘은 가장 최첨단의 그리고 이미 여성해방의 범위를 넘어서 모든 종류의 사회적 약자와 피억압자의 해방 뿐 아니라, 성소수자와 성 다수자의 구분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성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사상에 있어서 주류 비주류의 경계 자체를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배제의 논리를 불가피하게 담지하는 정체성 구분 논리 자체를 해체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 매우 급진적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트랜스페미니즘은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과 연결되는 부정 신학(apophatic theology)적 요소 담지. 전통적인 양성(兩性) 구조를 허물어뜨림
켈러의 트랜스페미니즘의 사상적 배경은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과 후기 구조주의 해체철학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과 연결되는 부정 신학(apophatic theology)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녀가 제시하는 트랜스페미니즘은 상당 부분 데리다를 공통분모로 하여 버틀러의 해체 논리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다른 사상들 곧 양자(量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근거한 과정신학(process theology)과 니콜라우스 쿠자(Nicholas of Cusa)의 중세 신비주의 부정신학(apophatic theology), 케런 바라드(Karan Barad)의 신유물론(new materialism) 등으로부터 그 사상적 단초들을 모아 또 다른 이론적 토대를 구성하고 있는 제3세대 페미니즘이다.
이러한 제3세대의 페미니즘은 전통적 사회적 가정의 기본인 생물학적 성을 부정하고 남성이 여성으로, 여성이 남성으로 되어감을 말함으로써 젠더주의가 말하는 사회적 성을 수용할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성을 생물학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과정철학적 생성 관념에서 이해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의 존재론적 상호얽힘을 주장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으로 된 전통적인 양성(兩性) 구조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II. 켈러의 트랜스페미니즘의 3가지 특징: 과정신학, 부정신학, 신유물론으로 구성
켈러의 트랜스페미니즘은 과정신학, 부정신학, 신유물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양자역학, 신비주의 및 젠더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1. 과정신학: "양자(陽子) 얽힘"에 근거한 관계적 과정 우주론(relational process cosmology)으로서 범신론적 신비주의에 빠짐
켈러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 이하 입자들의 이러한 상호 얽힘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과정신학의 관계적 우주론(relational cosmology of process theology)" 또는 과정우주론(process cosmology)을 제시한다. 이 견해는 모든 것을 존재(Being)가 아니라 되어감(becoming) 즉 과정(process)으로 이해하는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유기체 철학 사상에 근거한다. 켈러에 의하면, 이 우주는 "무한한 미완성의 상호활동성(interactivity) 가운데 우리 자신의 구성적 관계성(constituent relationality) 속에서 펼쳐진다."
켈러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관념으로서 세계 만물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 관념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상호 내재성"(mutual immanence)과 "신비적 얽힘"(apophatic entanglement)을 주장하는 하나의 근거를 제공한다. 이 관념은 관찰자와 관찰대상 즉 주체와 객체가 서로 어울려 하나로 얽혀지는 현상을 뜻한다. 그리고 관찰도구들을 통해 이 얽힘 현상을 관찰하는 동시에 이 도구들이 현상에 함께 연결되어져서 복합적인 얽힘 현상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이전 근대 과학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은 다른 말로는 양자(量子)의 비장소성(nonlocality), 불가분리성(nonseparability) 등으로도 알려져 있는 현상이다. 얽힘(entanglement)이란 서로 상호작용했던 전자(electron)와 같은 두 입자들이 서로 멀리 떨어진 뒤에도 모종의 특별한 관계 유지 현상을 말한다. 그리하여 물리학의 상식을 깸으로써 모더니티(modernity) 자체를 허물어버리는 입자들의 신비한 특성을 말한다. 켈러는 장소를 확정할 수 없으며 분리될 수 없는 양자의 상호 얽힘 현상을 과정신학과 부정신학에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켈러의 상호 얽힘의 과정우주론은 끊임없는 생성 속에 있는 우주를 밝히는 설명이긴 하나 우주과정을 하나의 유기체적인 신으로 간주함으로써 하나님과 우주를 혼동시키고 있다. 우주는 하나의 살아 있는 자연으로서 상호연결되고 얽힘 속에 있다는 것은 상호 의존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존재적 가치가 무차별적으로 동일하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켈러의 과정 우주론은 모든 존재의 연속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존재 간의 불연속성을 간과하고 있다. 이러한 존재 이해는 진화론을 옹호하는 이론은 되나 성경적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지 아놓다. 케러의 과정 우주론은 만물이 각 존재 간의 한계를 지니는 우주라는 존재를 이루는 다양한 종(種)을 부정하고 있다. 성경은 우주가 테홈(tehom)이라는 원시적 존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무로부터의 창조된 피조물이요 모든 것을 동일하게 지으시지 않고 모든 존재에 한계를 정하시고 그 종류대로 지으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창 1:1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24). 창세기는 식물을 그 종류대로, 모든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지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지구는 생태 공동체로서 서로 연관되어 있으나 식물과 동물, 인간은 그 종류가 다르다. 식물과 동물,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천지와 물들을 창조하셨다. 하늘과 땅, 바다는 서로 다른 물체이며 그 가운데 식물, 동물, 인간은 서로 다르며 한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히지 않고 종 안에서 서로 교류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식물 안에도 다양한 종들이 있으며, 동물 안에도 다양한 종들이 있으며. 인간 안에도 다양한 종들이 있다. 켈러의 과정 우주론애서는 우주라는 과정적 존재와 신과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고 우주 자체를 신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모든 존재의 연속성과 상호 얽힘을 강조함으로써 범신론적 신비주의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켈러의 사상은 성경적 창조적 존재론에 배치되고 있다.
2. 신비주의적 부정 신학: 접힘(fold) 또는 주름(pli)으로서 설명되는 실재의 다겹성(multiplicity)의 철학으로서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긍정적 신학의 차원을 도외시
켈러는 저서 『불가능성의 구름』(Cloud of the Impossible)에서 부정신학(apophatic theology)의 신 이해를 "시(詩)적 신학(theopoesis)"으로 제시한다. 이 저서에서 켈러는 고대 카파도키아 교부 그레고리 닛사의 사상으로부터 중세 초기의 위 디오니시우스, 신플라톤주의 그리고 무명의 신비주의 작가의 저서 『무지성의 구름(Cloud of Unknowing)』과 니콜라스 쿠자에 이르기까지의 낯선 부정신학 전통의 논의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켈러는 "신비롭게 빛나는 어둠(luminous dark)"과 "무지성의 구름(cloud of unknowing)" 그리고 접힘과 펼쳐짐의 신(enfolding and unfolding God) 등의 다양한 은유들을 통해 하나님의 불가해성을 계속 시적 언어로 설명한다. 신비적 얽힘(apophatic entanglement)은 구름이란 은유로 표상된다. 켈러의 부정신학적 설명의 기본 틀을 제공하는 것은 들뢰즈가 차용하는 라이프니츠의 "주름" 혹은 "접힘"(the fold)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본래 물체와 정신의 관계에 대해 일원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켈러에 의하면 한계 지워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을 니콜라스 쿠자가 무한(infiniti)이라 명명할 때 이것은 우주의 무한한 다겹성 가운데 그 하나님의 접혀짐(enfold, complicans)과 펼쳐짐(unfold, explicans)에 따라 역사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켈러의 저서 『불가능의 구름』은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복합(complication), 전개(explication) 그리고 의미(implication)의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켈러의 부정신학이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특정한 실체로 간주하고 말하는 기독교 정통의 신학적 언어가 가지는 지배적 권력성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신비(Mystery)와 흑암(Darkness)을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켈러는 하나님 체험에 대한 모든 확실성을 뒤흔드는 부정신학을 작업한다. 켈러는 특별히 니콜라스 쿠자에게서 "무지의 교사(doctor ignorantia)" 또는 "아는 무지"(knowing ignorance)라는 개념을 취하여 "신비는 지배를 좌절시킨다"라고 피력하면서 해체작업을 한다.
이러한 켈러의 부정신학은 성경적 신 개념에 적합하지 않다. 하나님은 비록 초월적 숨어계시는 존재이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드러내심에 의하여 그의 불가지성은 극복된다. 사도 요한은 숨어계시는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드러내심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성경의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계셔서 본 사람이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사도요한은 그의 서신에서도 다음같이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하나님은 신비와 흑암 속의 존재이긴 하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듣고 보고 만지고 이해하고 느끼는 존재임을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켈러의 부정신학은 성경이 증언하는 이러한 하나님의 긍정적 신학의 차원을 도외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정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긍정신학으로 대치되는 것이 정통 기독교 신이해의 바른 길이다.
3. 신유물론으로서 상호육화(相互肉化)(intercanation)론: 물질들의 상호 교류 힘들의 역동성인 진입행위(intra-action)로서 로고스가 인간이 되는 정통교회의 성육신과는 전혀 다름.
켈러는 양자역학의 신비하고도 상식을 뛰어넘는 발견들을 반영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과 오늘날의 유물론을 함께 묶어서 기독교 신학적 반성의 자료들로 삼아 기독교적 유물론의 한 형태인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을 제시한다. 신유물론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는 단순히 물질과 얽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물질화(materialization)는 다른 물질화와 얽혀 있다. 이 신유물론은 화이트헤드, 들뢰즈, 가타리, 스텐저 등에 영향을 받아 과거 유물론의 부작용으로부터 물질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특히 바라드(Karan Barad)가 보다 강조하는 개념은 진입 행위(intra-action)이다. 이 개념은 사물들이 있어서 상호작용(interaction)한다는 기존 개념을 대체하면서 모든 물질화 과정에 필연적인 진입행위를 강조한다. 이 진입 행위의 대행자(agent)는 인간이나 개인이 아니라 모든 물질들이 상호(相互)간 교환하고 분산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힘들의 역동성이다. 켈러에 의하면 물질화 과정에 이러한 진입 행위를 이해하게 되면 사물간의 절대적 분리나 전통적으로 이해된 객체 개념이 불가능해진다. 사물은 항상 다겹적으로, 집합적으로, 혼합적으로 그야말로 진입행위들과 복합성들로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켈러는 양자역학에 근거한 신비한 물질성(apophatic matter)을 담지 할 수 있는 관계적 상호육화(relational intercarnation)의 비전을 제시한다. 켈러는 퀴어적 생태적 연결성을 주장하는 다애적 공간(polyamory of place) 개념을 언급하면서 다애적 범재신론(polyamory panentheism)을 지향한다. 켈러는 기독교 신학 전통의 몸에 대한 억압적 요소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며 그러한 이분법적, 본질주의적 물질 이해와 몸 이해에 근거한 전통적 그리스도의 성육신론을 미신적(superstition) 기독론이라 일컫는다. 전통적 성육신론을 거부하고 나왔던 블랙(black), 라티노(latino), 퀴어(queer) 또는 소피아(sophia) 기독론 등의 다양한 해방 기독론들은 덮어씌운(superposition) 기독론들이다. 켈러는 전통적 기독론을 거부하고 퀴어 기독론을 수용한다.
이러한 켈러의 육화론은 물질의 상호 진입행위로서 로고스가 인간이 되는 정통교회의 성육신론과는 전혀 다르다. 사도요한은 다음같이 증언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켈러는 이러한 성경적 성육신론을 미신이라고 거부하고 물질과 물질 사이의 상호(相互)간 교환하고 분산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힘들의 역동성을 주장하는 것은 생성철학적 신비주의을 수용하고 있으며 성경적 기독교 신학의 성육신론의 기반을 떠나고 있다. 켈러의 신유물론적 관계적 육화론은 초월적 하나님이 인간 속에 들어오신 로고스의 자기 비하 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도 요한의 성육신론에서는 말씀이 인간의 육신 가운데 들어오시나 말씀은 결단코 인간의 신체와 혼합되거나 초월성을 상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씀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과 진리를 충만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적 성육신론은 진정한 신비적 사건이며 이는 자연적 신비가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인간 구속의 사건으로서 하나님이 자기 비하하신 케노시스(kenosis)의 사건으로서 미신적이거나 신화적 시간이 아니라 AD 1세기에 유일회성으로 역사에 일어난 진정한 기적의 사건으로서 신학적 사건이다.
III. 만물은 무한한 "상호 얽힘"의 관계성 안에 있는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으로 존재
1. 만물의 상호 얽힘과 상호교차성 사상은 성경적으로 정초된 우주론과 배치
트랜스페미니즘이 삶의 가장 궁극적인 문제와 관계될 때 '트랜스페미니스트 여성신학'(transfeminist version of feminist theology)으로 작동한다. 이 때에 세 가지 빠트릴 수 없는 기준이 있다. 그 첫째 기준은 가장 내밀한 것에서부터 무한에까지 모든 것을 연결하는 "얽힘(entanglement)"이다. 둘째 기준은 무지성(不知性, unknowing)으로서 무지에서부터 지혜까지 확장되는 불가지적 불확실성(apophatic uncertainty)이다. 셋째 기준은 정통주의에서 다원주의까지 가로지르는 다층적 진리를 고려하는 다수성(multiplicity)이다.
켈러의 트랜스페미니즘은 모든 개개인의 고정된 정체성 개념을 부정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무한하게 "상호 얽힘"의 관계성 안에 있는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이 양자(陽子) 얽힘은 다른 말로는 양자(量子)의 비장소성(nonlocality), 불가분리성(nonseparability) 등으로도 알려져 있는 현상으로 물리학의 상식을 깨는 입자(粒子)들의 신비한 특성을 말한다. 켈러는 이런 차원에서 모든 여성의 경험을 넘어 모든 종류의 약자 및 주변인들과 성소수자들의 연대성 뿐 아니라 가능한 모든 존재와의 상호연결성을 천명하였다. 트랜스페미니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 간성(intersexual)과 무성애자(Asexual)를 포함하며(LGBTQIA), 나아가 모든 종류의 해방운동을 아우르면서 상호적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이 얽혀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트랜스페미니즘은 이러한 상호 얽힘의 관계 속에서 모든 여성의 경험을 넘어 모든 종류의 약자 및 주변인들과 성소수자들의 연대성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존재와의 상호 연결성을 말하고 있다.
켈러는 모든 존재의 상호얽힘과 상호교차성을 다음같이 피력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의 의식적 연결: 지혜는 너무 크고, 진리는 너무 다층적(manifold)이다... 이 장(field) 안에서 상호교차성은 서로가 십자로처럼 교차되는 것일 뿐 아니라 서로의 자아 구성 요소 안에 참여함으로써 하나의 동시적 상호 관계성의 밀도(density)로서 꽃 피어난다." 따라서 트랜스페미니즘은 여성신학의 차원을 넘어 관계적이고, 다원적이고, 해체적인 과정신학, 부정신학 그리고 "시(詩)적 신학(theopoetics)"을 추구하는 매우 급진적인 사상이다. 지속적 변화를 위한 트랜스페미니즘은 젠더(gender, 사회학적 성) 개념과 "얽히면서"(entangled) 인종, 경제, 생태계 그리고 가장 내밀한 성(sex)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운동 모두를 포괄한다. 이러한 과정신학의 모든 존재의 상호얽힘과 상호교차성 사상은 동성애적 성 개념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만물의 상호 얽힘과 상호교차성 사상은 고전적인 만물의 고정성과 무연결성 사상을 과정 철학적으로 극복하는 것으로서 끊임없이 생성하는 우주를 설명하는 자연신학적 이론으로서 공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성경적으로 정초된 우주론과 배치되기 때문에 정통개혁신학적으로는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성경적 우주론은 태홈에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창조론에서 비로소 바르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성경적 우주론의 테두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22절).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23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의 증언에 의하면 인간은 만물과 단지 상호연결되고 교차적인 존재임을 너머선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은 만물과 동일시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은 만물의 청지기로서 만물을 지키는 자다. 그리고 인간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속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
2.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존재는 만물과 상호 얽힌 존재 아닌 천사보다 귀한 존재.
켈러의 과정우주론이 제시하는 "모든 존재의 상호 얽힘과 상호 교차성" 사상은 정통개혁신학은 수용할 수 없는 사상이다. 왜냐하면 이 사상은 성경이 제시하는 남성과 여성, 남컷과 수컷의 성적 이원성을 허물어 뜨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존재의 상호 얽힘과 상호교차성 사상은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성이 존재 본성적으로 아메바나 지렁이나 곤충이나 짐승과 다름이 없다고 보기에 이른다. 인간 존재란 원시존재로부터 진화한 고등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 존재의 본성이란 하나님 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을 받은 천사보다 귀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8편에서 창조주의 지음을 받은 인간성의 위대한 헌장을 노래하고 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 8:4-5)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른 만물과는 달리 영광과 존귀와 위엄을 부여하셨다: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시 21:5).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과 상호얽힘의 존재로 만드시지 않고 만물을 다스리고 만물을 돌보고 지키는 청지기요 정원사 역할을 하는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셨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시 8:3).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시 8:6).
성경은 만물의 청지기인 인간이 불순종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징벌받음으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창 3:17a)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 3:18a). 이 구절은 만물은 상호얽힘이나 교차가 아니라 영장인 인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피조물의 썩어짐의 종노릇을 언급하고 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롬 8:20).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롬 8:21a)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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