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로마의 군사력이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로마는 그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을 점령하였고 점령지까지 도로를 놓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엄청난 말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로마에 대항한다는 것은 몸에 기름을 붓고 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감히 로마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을 완전히 뒤엎은 인물이 등장하였습니다. 카르타고 출신의 한니발입니다. 한니발은 도저히 넘을 수 없다고 일컬어진 알프스산을 넘어 로마군을 공격한 인물입니다. 수만 명의 군인들과 37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북부 이탈리아에 나타난 한니발의 군대는 로마군에게 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은 방식은 당시의 로마인들이 하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인이 이용하지 않는 아르노 강의 습지를 따라 3박 4일간이나 이동하였던 것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로마를 공격한 한니발의 공격으로 인해 로마군은 힘을 잃고 말았지만 한니발의 군대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배고픔과 피로로 인해 많은 군인들과 말들이 타격을 입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대가 한니발을 따라 움직였던 것은 한니발이 편안하게 앉아 명령만 내리는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고난의 한 복판에 서서 모범을 보인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습지를 지나가는 동안 한니발은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매사에 적극성을 가지고 앞장섰습니다. 결국 한니발의 한쪽 눈이 감염되어 실명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장서는 한니발의 모습은 군대에게 강력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한니발의 군대는 여러 문화권의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한니발은 누미디아인으로 구성된 기병, 에스퍄냐 보병, 킬트족 보병이나 기병 등 특정 군대를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고 동일하게 대했습니다. 특정 군대를 앞세워 방패막이를 삼은 채 자신이 뒤에 숨어 있지를 않고 자신이 전장의 가장 앞자리에 서서 싸우며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 한니발의 솔선수범과 용기 앞에 각기 다른 군대는 한 마음이 되어 싸울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지도자들 중에 과연 한니발처럼 자신이 먼저 앞장 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자리에 앉아 아랫사람들에게 지시나 내리는 그런 지도자 말고 고난의 한 복판에 서서 자신을 따르라고 외치는 지도자들이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손해도 보지 않고 희생도 하지 않은 채 팔짱 끼고 앉아 있다가 생색내거나 과시할 수 있는 자리에만 얼굴을 내미는 지도자들을 너무 많이 봐온 탓에 생긴 현상입니다.
지도자의 자리가 명령하는 자리가 아니라 먼저 움직이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도자의 자리는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이며,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내어주는 자리이며, 뒤에서 조종하는 자리가 아니라 앞에서 모범이 되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지도자들이 나온다면 국민들은 기꺼이 지도자들을 존경할 것이며 그들이 제시하는 비전을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니발이 아니어도 영원한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십자가의 자리에 몰아넣으시고 자신은 뒤에서 고통당하는 제자들을 구경하고 계시던 분이 아닙니다. 거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잠에 골아 떨어졌을 때도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이 될 만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다 도망가 버린 상황에서도 골고다 길을 홀로 걸어가시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이제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안락한 자리에 앉아 보장된 삶을 즐기는 것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고민하면서 현재 주어진 사명에 생명 걸고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나 교단의 지도자라고 한다면 교인들보다 더 높은 헌신의 모습으로 앞장서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뭇 교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감리교나 한기총의 사태, 각 교단 지도자들의 추문은 교회의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할 일입니다.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3장.
글ㅣ안희환 목사(예수비전교회 담임목사‧기독교싱크탱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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