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박용국 기자]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정서영 목사)은 3.1절 98주년을 맞아 유적지 순례 및 임역원 워크숍을 갖고 나라사랑의 정신을 함양하는 한편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를 비롯해 임원과 법인이사, 상임특별위원장, 회원교단(단체) 총무 등 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월 23~24일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3.1절 98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라와 한국교회를 위한 사명을 다짐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한교연 임역원들은 23일 오전 유관순 열사를 비롯, 수많은 우국 독립지사들이 투옥돼 고초를 겪은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는 것으로 순례일정을 시작해 경기도 발안 제암리교회, 충남 강경성결교회, 강경침례교회를 거쳐 변산 대명리조트에 여장을 풀고 3시간동안 한국교회 현안을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튿날인 24일은 변산을 출발해 김제 ㄱ자교회와 전주한옥마을을 둘러보고 귀경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울 서대문 독립문역 인근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8년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경성감옥으로 1945년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곳이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이 수감되었던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1988년 국가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상설전시관과 옥사전시관을 갖추고 있으며, 옛 서대문형무소 건물들을 복원해 전시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상설전시관 1층은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를 주제로 전시관이 조성되어 있으며, 상설전시관 2층은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담은 3개의 민족저항실과 서대문형무소에 있던 지하고문실이 복원, 전시되고 있다.
옥사전시관에는 형무소 조직기구와 감시도구, 그리고 재소자들의 하루 일과 등 전반적인 형무소 생활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중앙사가 있고,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11~12옥사, 재소자들이 군수품 제작에 동원되었던 공작사 등이 있다. 야외전시물로는 한센병사, 사형장, 유관순 지하감옥, 망루와 담장 등이 있다
제암리교회
제암리교회는 일제의 한국교회에 대한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역사적 현장이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있은 후 4월 15일 오후 2시경 일본 육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가 이끄는 일단의 일본군경이 앞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제암리에 도착해서 마을 주민 약 30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하였다. 주민들이 교회당에 모이자 아리타는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게 하고 집중 사격을 명령하였다. 그때 한 부인이 어린 아기를 창밖으로 내어놓으면서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일본군경은 그 아이마저 잔인하게 찔러 죽였다.
일제는 이같은 학살을 저지르고 증거인멸을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질러 밖으로 나오려 하던 주민들까지 불에 타 죽게했다. 이때 교회당 안에서 죽은 사람이 23명,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일제는 인근의 교회건물과 민가 등 31호에 불을 질러 또다시 살상자를 내었다.
이와 같은 일제의 만행은 선교사들의 분노를 사게 하여 선교사 스코필드는 현장으로 달려가 그 생생한 모습을 사진에 담아 '수원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미국에 보내어 여론화함으로써 일제의 잔학 행위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강경성결교회(최초의 신사참배 거부)
강경성결교회는 한국교회의 신사참배거부운동의 진원지이다. 1924년 10월에 일어난 이 신사참배거부 사건은 일제 총독부가 1925년 조선신궁을 완공한 후 신사참배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려던 정책을 10여년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은 1919년 3월에 일어난 일제 경찰에 의한 존 토마스 감독 구타 사건과도 연계되어 있다. 이 구타 사건은 영. 일간의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고 결국 토마스 감독은 보상금을 받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강경성결교회 최초의 예배당 은 바로 이 보상금의 일부로 지어진 것이다. 강경성결교회는 민족애와 항일의식에서 남다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강경성결교회 안에 세워진 “최초 신사참배거부 선도기념비”는 1924년 10월 강경공립보통학교에서 일어난 한국내 첫 신사참배 거부를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신사참배는 당시 강경성결교회 성도였던 김복희 교사와 학생 57명이 집단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1925년 조선신궁 건립 등 신사참배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려던 일본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10여년 후퇴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경침례교회
1896년에 창립된 강경침례교회는 논산 지역 개신교 중에 가장 먼저 설립된 교회이다. 1889년 한국에 온 캐나다인 선교사 펜윅의 영향으로 미국 보스톤 클라멘톤 침례교회 엘라씽기념선교회에서 파송한 폴링과 스태드맨의 선교로 1896년 2월 9일 지병석이 강경읍 북옥리 136번지 자택에서 강경침례교회를 시작하였다. 1906년 이 교회에서 침례회 최초의 총회가 열렸으며, 그때부터 개설한 성경학교는 현재 대전에 있는 침례신학대학교로 발전하였다.
옥녀봉으로 가는 정상 부근에 옛 강경침례교회가 있던 자리가 있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당시의 초가집 교회를 복원해 놓았다. 안내판에는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37번지[옥녀봉로73번길 28-12] 옥녀봉에 위치한 강경침례교회는 미국 침례교단에서 파송된 파울링 선교사 부부가 강경의 지병석씨를 전도하고 1896년 2월 9일 주일예배를 드린 후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침례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종교의 탄압과 항일사상의 근거지를 말살하려고 신사를 짓는다는 명분으로 1943년 교회를 폐교하고 몰수하였다.
그러나 8·15 해방이 되자 윤석훈·라상순 집사와 성도들의 노력으로 강경읍 홍교리에 있던 일본인들의 사찰을 교회당으로 삼아 다시 교회를 열었으며, 이종덕 목사가 초대 담임으로 부임하였다. 6·25전쟁 당시 교단 총회장이었던 이종덕 목사는 9·28 서울 수복 시 퇴각하던 공산군에게 금강 변 갈방으로 끌려가 순교하였다.
김제 금산 'ㄱ'자교회
100여 년 전에 “ㄱ”자 형으로 지어진 교회로 지금까지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하나뿐인 교회이다. 1904년 무렵 미국의 젊은 선교사 테이트 목사는 사교가 우글거리는 금산리에 꼭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하고 전도를 위해 전주-정읍 간을 말을 타고 왕래하며 그 중간지점인 금산리에 머물곤 했는데 어느날 이 고장 마방의 주인인 조덕삼을 만나게 된다.
어느 날 조덕삼이 먼저 마방의 손님인 테이트 선교사에 접근하였고 둘은 서로 많은 교제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그리고 테이트 선교사에게 자기 집 사랑채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여 금산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금산교회가 시작되는 데는 또 한명의 빼 놓을 수 없는 주역이 이자익 목사이다. 그는 일제시대에도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세 번이나 지낸 목사로 이 무렵 이자익은 조덕삼 씨의 집에서 일하던 마부였다. 그는 소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한 무학자였지만 매우 총명하여 마부로 일하면서 틈틈이 독학 하였고 또 주인을 따라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는 이 두사람과 박희서가 세례를 받고 성찬예식을 거행하고 금산교회가 공식으로 출발하는 시초가 되었던 것이다.
그후 교인이 100명 가까이로 불어나자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는데 조덕삼은 떨어지고 머슴인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되었다. 반상을 엄하게 따지던 봉건적인 시대에 조덕삼은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나는 이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고 발표하였다.
그 후 집에 돌아오면 주인과 마부요, 교회에서는 장로와 평신도로 두사람이 열심히 자기 직분을 다하였다. 그 뒤 조덕삼도 장로가 되었지만 그는 자기 집 머슴인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유학시키고 목사가 되기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고 목사가 된 후에는 금산교회에 초빙하여 담임목사로 시무하게 하여 교회가 더욱 부흥하게 되었다.
한국교회현안 주제로 임역원 워크숍
한편 대명 변산 리조트 앙금홀에서 열린 워크숍 개회예배는 김효종 목사의 사회로 박요한 목사의 기도, 황인찬 목사의 ‘3.1독립운동의 신앙정신’ 제목의 설교, 송태섭 목사의 축도로 진행됐다. 이어 기획홍보실장 김훈 장로의 사회로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를 비롯한 임원과 법인이사, 상임.특별위원장, 직원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는 “이번 임역원 워크숍이 한교연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으로서 투철한 사명의식을 확인하고 올바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두어 준비되었다”고 밝히고 “과거 믿음의 선열들이 보여준 애국애족의 정신을 함양하고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명령하신 사명을 재확인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이어 사무총장대행 최귀수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워크숍은 문영용 목사(이슬람대책위원장)와 이만석 목사(이슬람대책연구원장)가 ‘이슬람확산대책’, 황인찬 목사(바른신앙수호위원장)가 ‘이단사이비대책 및 활동’, 염안섭 목사(동성애대책위원장)가 ‘동성애 확산 및 입법반대’, 고시영 목사(한국기독교통합추진위원장)가 ‘한국교회 하나됨’을 주제로 각각 주제발표하고 이어 토의로 진행됐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