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지난 주일 오후예배를 마친 후 몇몇 교회에서 앞장서서 일하는 분들이 교회 성물을 변경하면 어떠냐는 제의를 해왔다. 먼저 구석에 밀려있는 주보함을 중앙뒤쪽으로 옮기고 성가대석을 회중석 앞자리로 옮기자는 안이었다.
일언지하(一言之下)에 여러 해를 같은 자리에 있던 것을 왜 옮기려하느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니 ‘이렇게 진열해 놓은 교회는 우리교회 뿐’이라고 한다.
이렇게 ‘진열 해 놓은 교회는 우리 교회뿐‘이라는 말이 마음에 거슬린다. 그래도 마음이나 위로를 받자. 차라리 일등 교회가 되지 못할 바에는 조연의 목회를 구상 해 본다.
지난주 또 한 번 충격적인 뉴스가 들려온다. 평소 성적이 상위권에 들던 아들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엄마가 아들을 닥 달을 하니 결국 그 엄마가 그 아들에 의해 살해 되고 얼마동안 그 시신을 방치해 놓은 사건이 벌어 졌다. 평소에 이 학생은 품행이 방정(方正)하고 경제적으로도 아쉬울 것 없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또 벌어 졌을까?
어떤 통계에 의하면 한 번도 어려움과 좌절을 겪지 않고 자란 아들이 사회에 나와 작은 어려움을 겪게 될 때 이러한 난폭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고 한다.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나 교사 등 주위의 몇 사람의 가치관 속에서 둘러싸여 칭찬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던 차에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존재 한다는 현실을 직면하면서 그 병은 시작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바로 최고를 추구하는 병이다.
사람을 곧잘 최고한난계(最高寒暖計)로 비유한다.
여느 보통 한난 계는 기온이 오르면 수은주가 오르고 기온이 내리면 따라 내리는데 비해 최고 한난계는 수은주가 오르면 최고 표지의 푯말을 떠 받쳐 오르지만 수은주가 내리면 푯말은 그 최고 지점에 남아 있을 뿐 따라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이규태)
곧 최고 온도계가 표시하는 눈금과 수은주가 표시 하는 눈금과의 사이에는 항상 공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에 비기면 자신이 처해 있다고 생각되는 사회, 경제, 문화적 지위와 자기 자신 이 실제로 처해 있는 지위와는 어느 만큼의 공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바꿔 말하면, 내가 보는 주관적 자기와 남이 보는 객관적 자기는 일치하지 않으며 이 공백이 크고 작고의 차이는 있지만 일부의 우리 한국인에게 공통된 심성의 하나로 직시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 실제의 자기보다 상위에 자기가 처해 있다고 착각하는 이 같은 공백이 바로 우리를 불행하게 또는 불안하게, 각박하게 하고 초조하게 하는 인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에게 있어 이 ‘최고병’은 ‘외제병’과 종이 한 장 사이 이기에 최고병은 무분별한 외제 선호로 나타난다는 말에 본인도 동의 한다.
지금은 한물간듯하지만 오늘의 신세대 들은 ‘공주병’, ‘왕자병’이 아직도 유행병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는 듯하다.
이 병은 철저하게 부모가 만들어 낸 병이다. 전쟁 전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 생활 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오늘의 그들의 부모세대들은 웬만하면 고등학교 졸업 할 수 있었다.
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 한반에 한두 명 정도는 진짜 공주 같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애들은 같은 반의 아이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이 땅의 ‘공주’와 ‘왕자’들에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지하로 잠적 해야만 한다. 지상에서는 발붙일 곳이 점점 좁아지기 때문이다. 공주병, 왕자병은 다름 아닌 ‘주인공’병이다. 자기가 주인공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제 이런 주인공이 득세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까지 모든 주인들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실망 시켰다. 그 동안 한국 사회를 쥐고 흔들어 왔던 CEO라고 자·타천 대상이었던 분들이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 될 만한 모습을 보여 주었는가?
신세대들은 그 동안의 진부한 주연들을 무대에서 내려오게 만들고 있다. 대신 참신하게 주어진 자신의 역할을 90%라도 해내는 사람들을 주연의 자리에 앉히었고 그 과정은 현재 진행되고 있다.
대중들의 욕구 의식이 반영되는 대중문화의 경우를 주목해 보자. 이제 주연만이 주목 받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세상의 모든 조연들에 대한 재평가 이뤄져야 한다. 주연이 망쳐 놓은 세상을 조연 들이 나서서 원상태로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의식의 대전환 이 필요한 때이다.
바로 이제 학부모의 의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다시 재현되지 않도록 주연 의식에서 조연 의식교육으로 바꾸어 져야한다. 교계에서도 예외는 있지만 피 터지는 경쟁으로 주연 역을 맡은 분들에게서 맛고 싶지 않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
기왕지사 주연이 되지 못 할 바에야 조연의 역활이라도 충실하게 하옵소서. 조연의 시대가 닥아 오고 있으니 희망이라도 가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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