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외딴 섬 어느 마을에 한 소녀가 살았다. 총명하고 착한 그 소녀는 오빠처럼 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훈장 선생님과 아버지에게 야단만 맞을 뿐이었다. 여자아이가 글을 배우기 어려웠던 시절이기에…그래서 소녀는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자신만을 사랑해 줄 멋진 서방님을. 소녀에게 글자도 알려주고 사랑 노래도 불러줄…어느덧 아름답게 자라난 소녀는 꿈에 그리던 서방님을 맞게 된다. 유식하고 잘생긴 부잣집 도령. 매일 꽃과 함께 사랑노래로 수놓았던 그 사람과의 꿈같은 10년이 지나가고, 섬마을 여인 준경은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자살을 기도하게 되는데…"
[기독일보 이나래 기자] 실존인물 문준경 전도사(1891~1950)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수차례 자살시도를 할 정도로 삶의 희망이 없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 거듭나면서,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랑과 헌신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변화시킨 그녀, 땅 끝 섬마을로부터 여러 교회를 세웠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70여 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성해 낸 생명의 씨앗, 그 감동적인 실화가 뮤지컬로 탄생됐다.
12월 20일부터 31일까지 연동교회(담임 이성희 목사) 가나의집 열림홀에서는 '쏠라이트 뮤지컬 선교단'(이하 쏠라이트 미션) 주관으로 '뮤지컬 문준경'(연출·극본 심윤경)이 공연 중에 있다. 뮤지컬 문준경은 쏠라이트 미션의 '뮤지컬 손양원', '구원열차'에 이은 세 번째 작품으로, 감미로운 노래와 생동감 넘치는 안무로 관객을 찾고 있다. 쏠라이트 미션은 "인생에 실패한 초라한 여인이었던 문준경, 예수를 만난 후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게 된다"면서 "그녀의 인생 여정을 통해 기존 성도들에게는 신앙의 도약과 재충전의 기회를, 일반인들에게는 예수의 사랑에 깃든 따스함을 선사하고 싶다"고 했다.
쏠라이트 미션 대표 심윤정 집사(사랑의교회)는 뮤지컬 극본을 항상 본인이 쓰는데, "극본을 쓰기 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작품이 무엇인지 많이 기도를 하면서 여쭤보다가 '이것이다' 강하게 마음을 주시면 극본을 쓰기 시작 한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 주시는 영감으로 글을 써내려 가면 금방 써지더라"면서 특별히 이번 뮤지컬 문준경은 정태기 박사(크리스천치유상담연구원)의 새벽설교에 영감을 얻어 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정 박사는 문준경 전도사의 친척이자 제자로, 설교를 통해 문 전도사의 일대기를 마치 옆에 있는 듯 생생하게 전달했고, 심 집사는 그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심윤정 집사는 "뮤지컬 문준경을 통해 제일 바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선교단'이란 이름에 걸맞게, 믿지 않는 분들 신앙이 없는 분들이 보고 '예수를 만났다'고 하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라 했다. 더불어 "본인도 모태신앙이지만, 그냥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이 자살 끝자락에서 예수를 만나 180도 변화되어 거듭난 인생을 살았던 문준경 전도사를 만나, 도전을 받고 거듭난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면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님 바라시는 모습은 바로 그런 거듭난 인생의 모습일 것"이라 했다.
주연 문준경 역은 뮤지컬 배우 이찬미 씨(삼일교회)가 맡았다. 뮤지컬 문준경이 첫 기독교 뮤지컬이라는 이찬미 씨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서 "노래하는 사람은 전달자인데, 하나님의 마음을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그런 마음이 굉장히 컸다"고 했다. 이어 "문준경의 일대기를 통해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본인의 달란트로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하고, "(관객들이) 우리가 정말 알지 못했던 진짜 '위로'는 바로 '예수'라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작품과 노래로 감동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성봉 목사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서지훈 씨(광염교회)는 "믿음이 연약하다 생각했는데, '뮤지컬 가스펠' 등 기독교적 뮤지컬과 일반 뮤지컬이지만 각색해서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들을 해오다 보니 뭔가 하나님께서 본인을 강한 신앙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면서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 분과 동행하기를 원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관람하는 기독교인들이 연극을 통해 다시금 강한 신앙적 동기를 찾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하며 더욱 하나님을 찾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서 많은 이들이 뮤지컬 문준경을 찾기를 소원했다.
한편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2월 2일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문재경 씨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비교적 사정이 괜찮은 가문이었으나, 여성에 대한 차별로 글을 배울 수 없었고, 그녀는 다른 평범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1908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중매결혼을 한다. 그러나 문준경은 자식을 갖지 못했고, 첩이 들어서 아이를 갖게 된 후의 삶은 고난이었다. 그나마 준경을 불쌍히 여겨 글을 가르치고 아꼈던 시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준경은 결국 20여년을 살았던 신안군 증도를 떠나 목포로 이사하게 된다.
극심한 절망 가운데 살아가던 준경은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전도부인을 따라 북교동 성결교회를 찾게 되고, 그곳에서 부흥사 이성봉 목사를 만나 뜨거운 눈물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 이후 문준경 전도사는 사도바울처럼 변화되어 전남 신안군 21개 면 수많은 섬들을 구석구석 나룻배로 찾아 다녔고, 1년에 10여 켤레의 고무신이 닳아 떨어지도록 20여 년간 복음 전파의 길을 걸었다. 문 전도사의 노력은 신안군내 150여 교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증도 주민 2400여 명 가운데 목회자 160여 명, 장로 80여 명이 배출됐다.
세월이 지나고 6.25가 발발하자, 인민군이 들이닥쳤다. 문 전도사는 '새끼를 많이 깐 씨암닭'이란 죄명으로 끌려갔고, 칠흙같이 어두운 증동리 백사장 앞에서 "아버지여 저들에게 죄를 묻지 마시고, 죄 많은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마지막 기도를 남긴 채 1950년 10월 5일, 59세의 일기로 순교한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故 김준곤 목사는 "내 삶과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바로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라고 밝히고, "그는 내 초등학교 시절 외롭게 사시던 어머니를 위해 나룻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찾아오고는 했는데, 나를 껴안고 간절히 기도해 주던 기억이 새롭다"고 회고했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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