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지난 11월 7일 심동철 대표님과 함께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덕봉서원로 254-48번지 소재 온누리복지재단 소속 노숙인 쉼터 '친구네집'을 다시 방문했다. 첫 방문 때는 '그냥' 내방객이었지만 이번에는 특강 강사로...
첫 방문이 지난 8월 22일이었고 그 때는 '3기 친구들'이었는데 벌써 '13기 친구들'을 맞고 있으니 거의 두 달 반 정도가 흐른 셈이다.
첫 방문 이후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혼신을 다해 '친구네집'을 섬기고 계신 김환봉 목사님으로부터 수차례 '초대' 전화를 받았다. 다름이 아니라... 노숙인 형제들을 위해 '특강'을 요청하는 '고지서'였다. 처음에는 '영업 중이라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핑계로 '요리조리' 피해 다녔지만 지난 10월 숍 이전 문제로 문을 닫은 이후에는 목사님께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고... '이 잔을 피할 수만 있다면...'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자진해서 '매'를 청했다. 든든한 심동철 대표님의 응원이 큰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원래 내 전공이 강의인지라 '특강'이 두려워서 피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학술강의나 인문학강의에는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지만 처음으로 하는 '인생강의'인데다가 설상가상으로 타킷 청중이 노숙인 형제들이니... '도대체 어떤 주제로 강의를 해야 할까?'하는 고민으로 여러 날을 고심한 끝에...
결국, '돈 안 드는' 위대한 유산으로 타이틀을 뽑았다.
흔히들 유산은 돈으로 물려주는 것이 상례이지만 나는 선친으로부터 받은 '돈 안 드는'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고 아들에게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 S그룹도 H그룹도 따라 올 수 없는, 그 '신통방통'한 유산에는 육체의 유산과 영혼의 유산이 있다.
먼저 선친으로부터 받은 육체의 유산은 한센병 환자에 대한 아버지의 유산이다. 아마 내가 대 여섯 살 쯤 이던 때부터 목수인 아버지는 어린 내 고사리 손을 잡고 대구 집근처에 있는 한센병환자정착촌('애락원')으로 목공 봉사를 다니셨다. 봉사가 끝나고 나면 한센병 환자(물론 음성)들이 성치 않은 손으로 만들어 주는 '성찬'을 대접 받았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오그라진 손으로 만든 그 음식을 도저히 '삼키기' 쉽지 않을 그 음식을 아버지는 너무나 맛나게 드셨고 아버지가 드시니 나도 맛나게 '성찬'을 즐겼다. 이후로 나는 한센병 환자들이 만들어 주는 음식에 대한 거리낌이 '1'도 없어 졌다. 2,000년 초반 아들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처럼 나도 내 아들 손을 잡고 소록도 봉사를 갔고 나는 아버지와 꼭 같이 한센병 환자의 음식을 먹었고 내 아들도 나처럼 그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었다. 이후 여러 번 소록도 봉사에 함께 한 아들은 어느 듯 내 모습을 닮아 있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이웃사랑에 대한 이렇게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는데 아들에게 내가 물려 줄 유산이 무엇인가 고민을 했고 어느 날 그 기회가 왔다. 아들이 여섯 살 쯤 되었을 때인 듯하다. 시간 강사였으므로 시간이 많이 남아 자주 인사동 화랑들을 찾았는데 그 날은 여섯 살 아들을 데리고 화랑투어에 나섰다.
첫 번째 화랑에 들어서자 아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화랑 구석구석을 뛰어 다녔다. 다행이 관람이 뜸한 시간이어서 화랑 지키는 '누나'들이 눈감아 줬다. 두 번째 화랑으로 들어갔을 때도 부산하게 화랑을 돌아 다녔지만 첫 번째 화랑보단 덜 했고 세 번째 화랑에 들어갔을 때는 제법 의젓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듯 했는데...
"아빠, 그림을 보는데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거야?"라는 아들의 질문에 내심 '너 이제 낚였구나!'고 쾌재를 불렀다. "아니...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그림을 보는 것은 아니고... 그림을 보는데 도움이 되는 요령들은 몇 가지 있긴 한데... 우선 멀리서 그림을 보다 마음이 끌리는 그림이 있으면 다가가서 이 그림은 종이에 그린 걸까? 아니면 천에 그린 걸까?... 물감은 물로 된 것일까? 아니면 기름으로 녹여 그린 것일까?... 그리고 그림 밑에 보면 작가가 달아 놓은 제목이 있어... 그것도 도움이 좀 되긴 하지...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가 '나무'라는 제목을 달아 놓았을 지라도 네가 저건 '하늘'이라고 느끼면 그건 '하늘'인거야! 그 작가가 무명작가이건 피카소이건 상관없어. 네가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야!"
나는 내 아들에게 '영혼의 자유'를 유산으로 남겨 주고 싶었다.
마지막 유산은 영혼의 유산인데 부모님을 통해 예수를 만났고 이 만남은 내 영혼을 영원한 삶의 길로 인도 해 준 것이고 아들에게도 이 유산이 가장 중요한 유산이길 바라마지 않는다.
끝으로 "꼭 돈이 있어야 유산을 물려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돈보다 더 소중한 유산을 여러분도 물려 줄 수 있다."는 말로 특강을 마쳤다.
저녁 식사 후 그리고 아침 식사 후 준비해 간 핸드드립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려 대접했다.
다음 날 저녁에는 송한기 단장님이 리더하시는 '굿가이즈 섹소폰 예수선교단'의 열성적이고 멋진 공연에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아름다운 밤이었다.
대개 '노숙인 쉼터'들에서는 '정신개조' 등의 명분으로 온갖 강좌들로 타이트하게 돌린다던데... '친구네 쉼터'는 정말 자유롭게 2박 3일을 '쉬다 가면 되는 곳'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마당에서 뛰어 놀고 있는 강아지 '용이'와 '사랑이' 그리고 새 식구 '믿음이'처럼...
먼저, 노숙인 쉼터 '친구네집'를 세워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몸과 마음을 다해 쉼터를 섬기고 계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 김종규 칼럼니스트는...고려대학교(원) 불어불문학과 학사 및 석사, Laval 대학교 대학원 불어학(언어학·불어학) 박사, 서울대학원 및 고려대학교(원) 등 10여 대학 출강, 김박사커피밀(공정무역 유기농커피) 대표 역임, 로스터 & 바리스타, 커피창업·커피교육 컨설턴트, 스토리텔러, 번역가, 시인, 수필가, NGO '철들지않는사람들' 사무국장 / 연락처 salut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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