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ene #.1 : 1997년 어느 날, 아빠(39세- 대학 강사)와 아들(3세), 아이 엄마는 일하러 감, 아빠 공부방.
학회에 제출할 논문 데드라인(Dead Line)이 걸려 있어
아빠방 바닥은 참고 자료들로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다.
그 때 마루에 있던 아들이 아빠가 좀 전에 간식으로 만들어 준 샌드위치를 내밀며
"아빠, 이 거..."
하며 젖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와~, 뭐꼬? 간식 만들어 줬잖아... 고마, 가서 무라이... 아빠 정신없다."
아들은 말없이 다시 마루로 돌아갔다.
그런데 잠시 후 아들은 반 정도 먹은 샌드위치를 다시 내밀며
"아빠, 이거~ 엉~..."
울먹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아들을 보니
아들의 두 뺨에는 두 줄기 눈물이 폭포수를 이루고 있었다.
"뭐꼬, 이건..."
하며 아빠는 쓰던 논문을 팽개치고...
■ Scene #.2 : 아빠, 부엌
공부방을 뛰쳐나온 아빠는 광속(光速)으로 부엌을 향했다.
'먹거리 X파일"의 모 PD처럼 샌드위치 재료들을 면밀히 부검하기 시작했다.
[빵 : OK]
[야채 : OK]
그럼 캐첩(튜브식 오뚜X 캐첩)은?
한 방울을 손바닥에 짠 다음 맛을 보았다.
"허걱, 이런!..."
튜브 캐첩병에는 아이 엄마가 초고추장을 넣어 두었던 것이었다.
■ Scene #.3 : 초고추장 사건이 있고 난 며칠 후, 아빠와 아들, 장롱 앞.
아빠는 회초리를 들고 있고
아들은 장롱을 짚고 종아리를 걷고 서 있었다.
이는 아빠와 아들 사이에 맺은 ‘협약(다소 불평등하긴 하지만)사항’에 따른
'잘 못한 일'에 대한 '결산'장면이었다.
따지고 보면 제법 민주적 절차를 따른 제도였다.
아들이 자진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회계보고(-몇 대)’를 올리고
심지어 최후변론을 할 소명기회도 준 제도였다.
물론 최종 형량은 아빠가 정하긴 하지만
대개 최후변론이 형량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곤 했다.
아들은 '세 대'라고 형량을 자진 신고했다.
그리고 아들은 최후변론에 들어갔다.
"아빠는..."
아들은 일류 배우 뺨칠 연기로 울먹이며
"아빠는... 엉~엉~... 날 죽이려고... 샌드위치에 고추장을 넣고... 엉~엉~..."
아빠는 회초리 쥔 손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고
회초리를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메어지는 가슴도 가슴이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형장의 '망나니'가 웃음보를 터뜨리며 형을 집행할 수는 없지 않는가?
아들은 이후 몇 번 더 '고추장 샌드위치 사건'을 '원용'해 형벌을 면했다.
그러다... '영특한' 아들은 결국 아빠에게 '괘씸죄'로 걸려 가중처벌을 받았다는 슬픈 전설이...
■ 김종규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학‧석사)하고 캐나다 Laval 대학 대학원에서 불어학(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원 등 10여 개 유수대학에 출강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현 평화공동체 <철들지않는사람들> 사무국장과 공정무역 유기농커피 <김박사커피밀> 대표(확장·이전 중). salut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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