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면 어김없이 우리의 골목길을 단장하는 붉은 담쟁이 장미들을 쉽게 만납니다. 유월에 만나는 담쟁이 장미들은 아직도 한반도에서 현재형인 유월의 전쟁 트라우마를 어루만져 주는 듯합니다. 덩굴로 피어나는 장미들의 은은한 향기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개인적 희생을 마다 않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 평화의 일꾼들의(마 5:9) 아름다움을 연상하게 됩니다.
WCC는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기 어려운 시기였던 1984년에 도잔소 국제회의를 소집하여 세계교회들과 함께 남북한 교회가 한반도 분단의 문제와 씨름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한 바 있습니다. 2014년에 도잔소 국제회의 30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때 제네바의 유엔을 방문 중이시던 길원옥 여사가 도잔소 30주년 기념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국제회의에 참석하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여사는 간곡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선생님들, 제가 지금 힘이 들어서 준비했던 말을 다 잊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겠습니다. 전쟁이 나면 저 같은 사람 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길여사의 간곡한 부탁은 남북분단에 얽혀 있는 복잡한 이념적·역사적·군사적·정치적 문제를 새삼 ‘전쟁’이라는 단순한 궤도에서 다시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남한이 핵발전소 건립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전쟁이란 한반도의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파괴적 결과와 상상을 초월하는 사회적 퇴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핵이라는 가공할만한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때문에 전쟁 자체를 불법화하고 폐지해야 한다는 세계적인 반전평화운동의 주장에는 인류의 상생을 선택하고자 하는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전투요원들을 넘어서서 무고한 시민들의 인명 손실을 초래할 뿐 아니라 막대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는 전쟁의 길 대신, 갈등과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협상과 조정을 통한 상호공존과 평화의 길을 모색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청년들이 삼포·오포·칠포의 아픔을 겪고 있는 시대에, 천문학적 재정이 분단과 대결, 정복과 전쟁억지를 전제로 하는 무기 구입과 군사산업으로 투입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올 봄에 한국의 고향을 방문한 유엔 직원에게 들은 말입니다. 서울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께서 확신에 가득 차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북한이 군사적 도발로 전쟁의 빌미를 먼저 제공하면 그 틈을 타서 남한 군대가 재빨리 북진을 하여 북한 땅을 정복하고 북한의 핵무기도 우리가 보유해서 군사강대국이 된다는 시나리오였다 합니다.
참 갈 길이 멉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로운 평화, 곧 샬롬이 지닌 소극적 의미가 전쟁의 부재 상태라면 “전쟁 없는 한반도”야 말로 적극적 샬롬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입니다.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해서는 평화협정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쟁 없는 한반도”를 향한 사회적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사회적 정치적 의지가 발현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적극적 샬롬을 실현하고자 하는 교회의 영적 신앙적 의지가 우선 든든하게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지난 5월 28일에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5월 24일) 기념으로 “전쟁 없는 한반도! 생명, 평화, 상생의 한반도를 기원하는 2016 여성평화걷기”가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어린이들, 청소년들을 포함한 천여 명의 시민들이 평화를 염원하며 함께 걸었습니다. 평통기연과 WCC는 함께 이 행사에 참여하고 동행하였습니다. 어느 시인은 ”담쟁이 잎 하나는 /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고 노래했습니다. 평화를 갈구하는 신앙인들이 각자 자신이 처한 곳에서 바로 그 담쟁이 잎 하나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평통기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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