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가장 기쁜 순간은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날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2004년 9월 5일이 그 날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국제정치학도로서, 동북아시아의 패권주의 같은 거대담론에 한창 관심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별 생각 없이 참석하고 있던 교회내의 통일선교 기도모임인 ‘하누리 기도모임’에서, 하나님은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강권적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몇 달 뒤에 판문점 경비대대에서 군복무를 하게 된 것도, 제대하자마자 진호라는 북에서 온 친구를 만나게 하신 것도 그러한 부르심의 작은 과정이었습니다.
제대 후 저는 열정적으로 학교 수업과 세미나 등에 참여하면서 제 나름의 북한이라는 나라의 모형을 그리곤 했는데 당시 제가 생각했던 북한이란 사회과학적으로 개조하여야 할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호와의 만남을 통해 ‘북한’과 ‘통일’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현상과 개념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연구와 논의가 정책과 전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생산되지만, 이는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였던 것이고, 하나님은 거대한 나라나 이념이 아닌 ‘한 영혼’을 아끼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일을 하면서도 진로를 두고 고민하던 저를 법조인의 길로 인도하신 것도 예의 그 부르심이었습니다. 로스쿨 과정을 무사히 마친 후 저는 이제는 드디어 새로운 직역에서 사명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겠다고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법전조차 펴본 적이 없던 국제정치학도에게 기독법조인이란 어떤 존재인지, 법률전문가로서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는 한없이 막막한 질문이었고, 무엇보다도 변호사로서 바쁜 삶을 살게 되니 삶과 신앙의 균형조차 잡기 버거워지는 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저의 열심과 열정이 점점 식어갈 때쯤, 하나님께서는 ‘통일법센터 LOOK’을 통하여 북한과 통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또 다시 알려주셨습니다. 통일을 꿈꾸고 준비한 수많은 선배법조인들을 통하여, 제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일하시면서 북한과 통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일꾼들을 준비시키셨음을 알려주셨고, 신앙의 선배들을 실제적인 삶을 통하여 현실 속에서 어떻게 기도하여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변곡점마다 어김없이 열심이 앞섰던 저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강권적으로 제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일 뿐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가늠하곤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거룩한 욕심으로 미화할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무엇을 함으로써 하나님과 더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고 또한 우리의 모습에 따라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주실지 말지가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은 내가 어떤 모습인지와 상관없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전환점마다 제가 그러했듯, 우리는 사람에게 빚을 갚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하려는 마음이 여전히 앞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스라엘에게 "회개하고 돌이켜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시면서도, 이스라엘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아시고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음을 드러내시면서 은혜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모세에게 주신 두 돌판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진짜 아파하시는 것은 뭔가를 함으로써 구원을 가능하게 하려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중심에 진짜 하나님이 계시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현재 통일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저 역시 앞으로도 법조인으로서 통일의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목표이자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북한을, 그 곳의 한 영혼을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북한을 위하여 기도하고 통일을 꿈꾸는 것입니다. 통일을 꿈꾸고 준비하는 일꾼들 한 명 한 명이, 우리의 열심으로 계획한 통일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이 그리시는 통일의 모습만을 온전히 비추는 그런 반사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평통기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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