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5일 루시 고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 판사를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제9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추천했다.
연방상원에서 승인되면 루시 고는 한인여성으로 최초의 연방항소법원 판사가 된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연방법원의 2심 법원으로 한국의 고등법원에 해당된다. 미국에는 13곳의 연방항소법원이 있는데 이 가운데 제9 순회연방항소법원은 하와이, 캘리포니아, 알라스카, 몬타나, 네바다, 오레곤, 워싱턴, 괌 등을 관할한다.
미국에는 현재 179명의 항소법원 판사들이 종신직으로 재직 중이며 각 항소법원 마다 평균 13명의 판사가 있다.
루시 고 판사는 2010년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 판사로 추천되었고 연방 상원에서 90 대 0로 승인되어 지금까지 연방지법 판사로 활동해왔다. 고 판사는 2014년 삼성 대 애플 간 특허 소송을 맡아서 화제가 되기 되었다. 당시 소송에서 고 판사는 삼성이 애플의 특허권을 위배했다며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 판사는 청렴결백하며 공정하다며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적합하다고 밝혔다. 지난 연방지법법원 판사 승인시 민주, 공화 양당의 지지를 받았던 그녀라 이번 항소법원 판사도 양당 상원의원들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인 이민자의 딸인 루시 고가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추천된 것에 한인이민사회는 환영하고 있다.
한인협의회(CKA)는 성명을 발표해 “고 판사의 부모는 다른 이민자들처럼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 미국에 왔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희생했다. 그런 부모의 모습이 고 판사가 탁월한 리더십으로 공직을 수행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녀는 이 나라가 줘야 하는 최선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연방상원은 고 판사를 속히 승인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첫 한인 연방항소법원 판사는 루시 고 판사가 추천된 동일한 제9 연방항소법원에서 근무했던 허버트 최 판사다. 그는 1971년부터 별세한 2004년까지 재임했다.
최 판사는 1916년 하와이에서 사탕수수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14세 때까지 하루 12.5센트의 임금을 받으며 파인애플 가공공장에서 일했다. 그 후 양복점 재단사로 전직한 아버지의 후원으로 공부를 시작해 하와이대를 거쳐 1941년 하버드대 법과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한 후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법과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그는 유일한 동양인이었으며 한국계로 변호사가 된 것도 그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졸업 후 군법무관과 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1957년부터 2년간 하와이 검찰총장을 지냈으며 1971년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됐다.
최 판사는 작고한 부친의 빛바랜 재단사 자격증을 판사임명장과 함께 사무실에 나란히 걸어뒀는데, 사무실을 찾는 손님들에게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글·사진=케이아메리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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