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난 지 63년이 가까워오면서 무수한 통일논쟁이 있었고, 방법론이 제시되어왔지만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독교가 통일을 위해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서 필자는 정치경제학도로서 다소 생뚱맞고 단도직입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곧 교회와 기독교 NGO들이 북미국교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미국은 소련과 더불어 한반도의 분단에 책임이 있으며 통일의 열쇠도 쥐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전향적이고 협조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평화통일에 필수적이며, 북미국교정상화는 평화통일을 위해 필수적인 제도적 장치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북한과 화해와 협력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한국의 기독교가 사랑과 용서, 평등이라는 기독교의 이념으로 북미국교정상화라는 목표를 정하여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은 미국과 가까워지길 원하는가? 그렇다. 북한의 지도부가 원하는 것은 사회주의 통일이 아니라 생존과 체제유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것 같지만, 실지로는 미국을 짝사랑하고 있다. 짝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자기를 좋아해주길 바라는데, 상대조차 해주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경제제재를 통해 목을 조르니, 한을 품은 여자처럼 미국에 대한 증오가 커가는 것이다. 북한의 남한에 대한 태도도 비슷하다고 본다. 북미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면 북한의 체제는 중국처럼 국가자본주의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북한과의 갈등을 '문명의 충돌'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평화통일에의 길은 요원하다. 한국 기독교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부시대통령이 그러했던 것처럼 근본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 경우 기독교는 평화와 통일에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 우리는 그의 신앙을 의심하며 배척하지 않는다. 그가 참 신앙을 가질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준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사랑과 용서, 인내, 겸손, 평등을 귀중한 가치로 삼고, 가난한 북한을 업신여기지 말고, 약한 북한을 붕괴시키려하지 말고, 서로 도와 상호공존하며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
기독교와 북한의 사회주의는 공존할 수 있다. 이념적으로 기독교는 자본주의보다는 사회민주주의에 더 가깝다. 기독교는 만민평등을 지향하고,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자들에게 7년마다의 부채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기보다 힘들다고 하여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 부의 평등한 분배를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미국이나 남한이 북한과 손을 잡지 말아야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북한이 국교정상화를 이룬다면 통일은 코앞에 와있다고 해도 좋다. 북미국교정상화라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그것이 없이는 지난 63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했듯, 통일은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교회와 기독교 NGO들이 인도적 대북지원, 지속적인 남북 교류와 함께 궁극적으로 북미국교정상화를 지지하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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