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사랑의교회(담임목사 오정현)가 자랑하는 제자훈련은 사랑의교회가 지난 10여 년에 걸쳐 신자들을 예수의 제자로 양성하기 위하여 실시해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성경연구에 탁월하다고 인정받는 옥한흠 목사님의 3권의 저서를 지침서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훈련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지침서의 개정을 포함하여 프로그램의 근간이 되는 구원론에 대한 일대 수정작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은혜에 치중하여 인간의 책임을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제자훈련이 궁극적 목표로 하는 신자의 성화를 저지하는 역효과를 초래하여 32주간에 걸친 훈련에도 불구하고 신자의 삶에 예수의 제자다움의 열매를 맺지 못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디
제지훈련 II 교본의 제목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의 구원’이다. 그리고 그 중 13장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1에서 “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이미 본질상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 거룩하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거룩해 진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대단히 흥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후 6; 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리고 3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항상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한다. 이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으로 <고후 7: 1>으로 제시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은 <레 26: 12>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레 26: 3>의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묵상하면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이미 거룩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삶 곧 거룩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거룩한 사람으로 점진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옥 목사님은 왜 믿음으로 이미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고 주장하는가? 이는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그리고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루터와 칼빈의 개혁신앙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필자의 의구심은 제지훈련 II 교본의 명칭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의 구원’임에 미치면 의구심에서 확신으로 변한다. 이 책의 명칭은 분명하게 ‘칼빈의 견인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화를 열심히 가르치는 내용이 담겨있는 책이라고 하더라도 그 책의 명칭이 한번 구원 영원구원을 가르치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의 구원’인 이상 성도들의 성화의 삶에 동기를 부여하기 보다는 성화의 삶에 발목을 잡는 효과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라. 이미 내가 받은 구원은 아무도 흔들 수 없다고 확신하는 신자가 과연 얼마나 열심히 성화의 삶에 진력하겠는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주장하는 개혁신학이 그 신학의 근거로 삼는 바울 사도의 자신의 구원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보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 27)
사도 바울도 자신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가운데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게 하신다고 고백한다. 누가 감히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 12-13)
칭의구원을 받은 신자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하나님께서 신자가 성화의 삶을 사는 것을 소원하게 하 실 것이나 신자는 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화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완성된 구원인 영화에 이르는데 진력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칭의-성화 – 영화’의 통전적 구원관을 바로 가르치는 것이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 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 21-22)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빌 2장 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을 간과하고,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만을 근거로, 성화의 행위는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 BOOK II Ch 3, 12 p. 262).
이와 같은 칼빈의 ‘오직 은혜’ 성도 견인론을 믿는 신자들이 온전한 성화의 삶을 살 이유가 없다. 실제로 칼빈의 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 이 발간된 후 100년 동안 개신교 신자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보다 더욱 육적이 었으며 이를 반성하여 스코트랜드 장로교회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한 퓨리턴 청교도들이 3년 동안 성경을 연구하여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웨민신조)을 제정한 역사적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의 삶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각종 비리에 젖어왔고 대형 교회의 목사가 간음을 범하도록 까지 타락한 근본적 이유도 바로 칼빈의 견인론에 근거한 구원의 확신을 가르쳐 온데 있음은 물론이다. 그 대형교회 목사의 베스트 셀러인 로마서 강해를 보면 ‘구원은 자신은 아무 것도 할이 없이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주는 것이라고, 너무 쉬어서 사람들이 믿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계 지도자와 목사들이 웨민신조는 칼빈의 신학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잘 못 알고 있다. 칼빈의 예정론과 견인론을 담고 있지만 결론 부분에서 사실상 그러한 칼빈의 구원론을 페기한 것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므로 전세계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웨민신조를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이미 몇 편의 글을 일전에 크리스천투데이와 바른구원관선교회의 웹을 통해 게재했지만 다음 번 글에서 더욱 명료하게 빍힐 계획이다,
결론적으로 사랑의교회가 제자 훈련의 핵심인 성화 구원에 대하여 칼빈의 구원론을 발본색원하고 성경에 기록된 바울의 생각과 자세들 소개함으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도록 훈련해주시길 기대한다.
▶ 김병구 장로는 싱가폴 장로교단 장립 장로, 시카고 '약속의 교회' 은퇴장로로서 바른구원관선교회(바로가기)를 섬기며 기독교신문 '크리스천투데이'에서 칼럼니스트로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한솜미디어 펴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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