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고난주간이란 징검다리를 건너 성경대로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다. 4복음서는 모두 다 찬란했던 그날 아침을 부활 기사에서 절정 분위기로 다뤘다. 물론 요한은 좀 독자적으로 부활 기사를 다루기는 했다.
여하튼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가 “인류 역사상 예수가 부활했다는 증거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으며 또 부활보다 더 만족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없다”고 했고, 하버드 로스쿨의 사이먼 그린리프(Simon Greenleaf)가 “예수 부활은 역사상 어떤 사건보다도 더 확실한 증거로 입증된 사건”이라 했던 부활, 인류 역사상 부활보다 더 큰 사건도 없고, 부활보다 더 큰 기쁨도 없다.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부활이 없이는 교회의 존재 의미가 없고, 부활이 없이는 교회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며 교회의 존재 기반이란 말이다. 그렇다. 갈보리의 피흘림이 없었다면 우리의 구속은 불가능했고, 사흘 후 찾아온 부활의 아침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되었을 것이다.
부활에 대한 의심과 반론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빈 무덤과 배신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부활 증거와 순교자의 삶으로 컴백하고, 예수 부활 직후 기독교가 출현하는 등 유대 사회의 급격한 제도변화와 로마를 비롯한 전 세계로의 부활 소식 확산이 부활을 입증한다. 독일 신학자 칼·바르트(Karl.Barth)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을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누가 안 믿는다고 해서 이미 일어났던 부활의 역사적 사건을 없던 일로 덮을 수는 없다”고 했다. 4복음서 저자들은 모두 다 ‘빈 무덤’을 강조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 몸의 부활이었다는 증거다. 그 ‘빈 무덤’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
장사지낸 바 되시다
‘신 스틸러’(scene stealer)라는 용어가 있다. ‘장면을 훔치는 사람’이란 뜻인데,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연기력이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해 주연보다 더 시선을 사로잡는 조연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던 날, 제자들은 숨었지만 전혀 의외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을 소개한다. 숨어서 믿던 두 사람, 예수님의 장례와 관련하여 자신을 드러낸 신 스털러들이다. 한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라는 사람이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숨어있던 예수님의 제자였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선하고 의로운 공회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눅23:50-51). 그리고 요한에 의하면 마음으로는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 드러내고 믿지는 못했던 사람이다(19:38).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불이익을 감수할 용기가 없었던 사람,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 만나 눈 뜨고 예수님 덕분이라고 하다가 출교당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그의 두려움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제는 빌라도를 찾아가 당당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한다(19:38).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결국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의 시신을 모시고 와 유대인의 규례를 따라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자기를 위해 바위 속을 파서 만든 무덤에 장사한다. 마치 벳세대 광야에서 어린아이가 자신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림으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배불리 먹게 되었던 것처럼 자신을 위해 준비한 그 무덤이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핵심 증거가 된다.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자 바리새파 이스라엘의 선생이었던 니고데모도 마찬가지다.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말씀을 들었지만 아쉽게도 믿었다는 기록이 없다. 요한복음에 딱 세 번, 3장과 7장 50절. 19장에만 나오는 드러내 믿기가 두려웠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이 운명하시자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져와 예수님의 장례에 적극 동참한다. 공개적으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이제는 당당하게 어둠과 싸우겠다는 결단이다.
이 두 사람의 커밍 아웃,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로 결단한다. 역시 믿음에는 회색지대가 없는 것 같다. 세상이나 사람들의 눈초리 때문에 영적 신분을 적당히 숨기면서 살면 그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과 하나되는 부활에 연합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제자 같지만 실상은 아니고, 또 어떤 사람은 부족해 보이지만 진실한 제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가면 지금도 ‘성묘교회’가 있다. 예수님의 묘지인데 단순한 묘지가 아니다. 교회 안에 십자가가 섰던 골고다 언덕이 있고, 향품을 발랐던 도유석도 있고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던 성묘가 있고, 예수님의 시신을 뉘였던 돌침상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신은 없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장례 때를 묘사한 내용을 보면 안치에서 곧장 부활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애도의 시간이나, 삼일간의 어둠이나, 부활의 긴장감 같은 것을 느낄 틈조차 없다. 경험상 장례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입관 때, 고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유족들의 슬픈 감정이 가장 고조되는 때다. 닦고 감고 묶고 염하는 모든 과정이 슬프다. 그런데 요한이 전하는 주님의 시신에 마지막 염을 하는 장면이 너무 담담하다. 실신한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도 없고, 오열하는 사람도 없다. 진정 의인이었다며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사람도 없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바로 이어지는 안식일로 인해 시간이 없어 여인들이 향품을 준비하느라 바쁜데 요한복음에는 그런 부산함도 없다. 폭동도 없고, 찬양도 없다.
그저 일사천리로 무덤이 마련되고, 예수님의 몸에는 몰약과 침향을 100리트라나 바른다. 34kg 분량, 왕의 장례식에서나 사용되는 엄청난 양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예수님은 왕이셨다. 개역성경은 예수님의 시신이라 번역했지만, 원어는 ‘소마’, 예수님의 ‘몸’이라 했다. 그냥 숨 쉬지 않는 몸이랄까? 성경은 장사는 치르되 예수님을 죽은 자 취급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첫 목격자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 실망하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다.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혼자가 아니다. 누가는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무덤에 가서”(눅24:1)라고 했고,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눅24:10)라 했다. 마가는 요안나가 아니라 살로메라 했는데(막16:1). 그들이 무덤을 찾아간 이유는 예수님의 장례가 흡족하지 못했고 돌봐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시신에 향품과 향유를 발라드리기 위해서였다.
이해가 안되는 측면은 있다. 니고데모의 헌신으로 향품은 이미 충분했다. 물론 안식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시간에 쫓겨 니고데모의 향품을 다 사용하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또 향품과 향유를 갖고 왔다는 것, 그런데 이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주고도 또 주고 싶은 마음이니까.
하지만 무덤에 도착해 보니 무덤 입구의 돌이 옮겨져 있고, 무덤은 비어있었다. 그 돌은 보통 장정 여럿은 되어야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무게, 큰 돌이다. 그래서 마가복음 16장에는 여인들이 무덤 입구의 돌을 어떻게 옮길지 염려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리아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으로 확신했다. 해서 즉각 달려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리는데 2절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고 한 것을 볼 때 마리아가 혼자가 아니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상상도 못했다. 그저 빈 무덤을 보고 당황한 것,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빈 무덤의 첫 목격자다. 그래서 부활의 첫 증인이 된다.
“마리아야”, 부활하신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만나주신다. 마리아가 만나고자 했던 그리스도는 죽은 그리스도였지만 살아나신 그리스도였다. 왜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 주셨을까? 그것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비록 예수님이 싸늘한 시신이 되셨다할지라도 꼭 만나뵙겠다고 작정한,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이게 바로 부활의 첫 증인된 이유인 것 같다.
부활의 첫 증인 막달라 마리아, 일곱 귀신 들렸던 사람이다(눅8:2절). 귀신 들렸던 과거가 어두운 여인이었지만 예수님 앞에 와 눈물로 발을 씻겨드린 여인이기도 하다. 주님을 많이 사랑한 여인, 발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소중한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렸다. 열정적인 사랑이다. 예수님이 그 사랑을 받아주셨다고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렸을 정도다. “저 여자가 어떤 여잔데, 창녀 출신, 더러운 여자 아닌가? 게다가 귀신 들렸던 여자인데 발에 입을 맞추고 눈물로 발을 씻기게 놔두다니, 누군 줄 알면 거절해야지…” 생난리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남들에게 눈총받던 여인이지만 예수님을 너무너무 사랑했던 여인, 결국 예수님 빈 무덤과 부활의 첫 증인이 된다. 흔히 사람은 안 바뀐다고 하지만 마리아는 바뀌었다. 그녀의 사랑도 거룩한 사랑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아마 첫 목격자였기 때문일 것 같다.
베드로와 요한도 목격하다
마리아로부터 무덤 문이 열리고 주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 무덤을 향해 달려간다. 누가복음에는 베드로가 갔지 사랑하는 제자가 갔다는 언급은 없다(눅24:12). 사랑하는 제자가 갔다는 것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데 심지어 두 사람 중 요한이 더 빨랐다(20:4). 달리기 실력이 좋아서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젊은 요한이 더 빨리 달린 것은 당연한 거다. 베드로는 오랜 어부 생활로 무릎 관절이 나빠졌을까? 아니면 허리가 신통찮았을까? 또 아니면 부인하고 저주한 복잡한 마음으로 빨리 달려가서 뵐 처지가 아니였기 때문일까? 지름길을 알았을까? 그런데 뛰는 속도와 연령의 관련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요한은 주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요한은 나중에 디베랴 바닷가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예수님을 가장 먼저 알아본다. 사랑하기에 멀리서도 알아본 거다.
하지만 먼저 도착한 조급한 성격의 요한이 서성대며 안을 기웃거리며 베드로를 기다린다. 무서워서 아니면 숨이 차서?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형님 먼저’ 베드로가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다렸을까? 알 수 없다. 한편 베드로는 도착하자마자 성격대로 주저 없이 무덤 안으로 들어간다. 결국 남자 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빈 무덤을 목격한다.
들어가 보니 시신이 없다. 세마포만 놓여 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그 모양대로 세마포와 다른 곳에 놓여 있다. 누군가가 시신을 옮겼다고 본 마리아의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현장이다. 요한은 이것을 자세히 기록한다. 부활의 근거가 될 만한 현장 검증이 거짓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만일 당시 소문대로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면 세마포를 굳이 다 벗기고 훔쳐 갔을 리 없고, 또 현장이 이렇게 잘 정리되어 있을 수는 없다. 천이 찢어진 부분도 좀 있어야 맞지 않나? 또 그렇게 초미의 관심 대상인데 2000년 이상 시신을 못 찾는다는 것이 말이 되나?
이 과정에서 누가 먼저 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보고도 안 믿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요한이 은근히 믿음의 영예가 자기에게 돌아간 것처럼 기록했다는 거다. 베드로는 보기만 했지만 요한은 보고 믿었다고 했다. 모호하다. 바로 다음 절인 9절에서는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라고 한 것을 보면 결국은 알게 되었다는 것이기는 하나 요한이 믿었다고 한 것이 무엇을 믿었다는 것인지 애매하다. 레온 모리스는 “요한이 부활의 지식에는 도달하지 못하였으나 일차적인 신앙에는 도달하였던 것 같다”고 다소 애매하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이 막달라 마리아나 베드로와 달리 작은 사인을 보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고 해석하지만 9절과 연결해서 해석해 본다면 요한이 믿은 것은 빈 무덤이라 했던 마리아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믿었다는 뜻인 듯하다. 레온 모리스도 “요한이 빈 무덤에 강조점을 두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예수님의 부활, 아마 몸이 세마포를 투과하듯이 일어난 것 같다. 그래서 세마포는 그대로 남았고 머리를 감쌌던 수건 또한 그 자리에 그대로 개킨 듯이 남아 있었다. 예수님이 이날 저녁에 모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그랬다. 예수님은 마치 벽을 투과하듯이 나타나셨다(20:19). 부활의 몸이 시공간에 매이지 않는 몸이었다는 뜻이다.
요한은 두 제자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로 이 단락의 결론을 짓는다(10절). 8절에서 언급한 믿음도 동일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빈 무덤 보고 집으로 갔다? 아직은 부활 확신 단계가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하나님은 두 제자도 빈 무덤을 보게 하셨다. 부활을 직접 확인하고 완전 딴사람이 되게 하신 거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대로 목숨 건 부활의 증인,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십자가를 자랑하는 순교자의 삶을 산다. 결국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한다. 부활절은 부활을 증명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는 시간이다.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믿기만 하지 말고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
인천신기중앙교회 담임 이희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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