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고도의 전문성과 까다로운 교육제도를 통한 현대 의학교육의 발전

현대 의과학의 발달과 함께 현대 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고도의 전문성과 까다로운 교육제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의사가 되기 위해 그리고 의사가 된 후에 받는 교육은 3가지 그룹으로 나눈다. BME(Basic Medical Education) 의대교육, GME(Graduate Medical Education) 수련교육, CPD(Continuing Professional Development) 평생 연수교육이다.

이러한 의학교육의 현대화와 과학화는 19세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획기적인 변화의 시기를 거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이 현재 의학교육 시스템의 틀을 만들었다. 의학교육의 획을 긋는 교육개혁이었다. 지식의 전문화와 체계화, 우수한 인재 선발, 교육 기준에 미달하는 교육기관 폐쇄를 통해 의학교육의 발전을 이끌었다.

20세기 초까지 북미의 의학교육은 학교에 따라 수준이 매우 달랐다. 과학적 기초 지식이 부족한 교육 과정과 체계적인 임상 훈련의 부재로 인해, 의사들의 의학 지식과 술기(technique)가 천차만별이었다. 많은 의과대학이 상업적 목적으로 운영되었고, 고등학교만 나와도 의대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입학 요건이 느슨했다. 이러한 학교들은 대부분 학생 등록금을 통한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어 학문적 엄격성보다는 수익 창출에 목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임상실습을 통해 표준화된 임상술기를 익힐 교육제도가 절실히 필요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런 의학교육의 문제를 개혁하는 작업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이들의 목적은 환자를 우선하고(Patient First), 환자의 이익(Patient Interest)을 위한 의학교육을 추구했다. 두 갈래로 의학교육의 개혁이 이루어졌다. 하나는 의과대학 교육 과정의 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체계적인 수련 과정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현재 수련 과정으로 자리 잡은 인턴(Internship)과 전공의(Residentship) 수련제도는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의 윌리엄 오슬러(William Osler)와 윌리엄 헐스테드(William Halsted)가 처음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정착시켰다. 체계적인 수련 과정을 통해 전문화되고 실무 경험이 풍부하고 유능한 전문의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각 전문의들은 해당 전문학회의 인증을 통해 전문의 자격증이 유지되고 있다.

의과대학 교육의 전문화와 체계화는 1910년 에이브러함 플렉스너(Abraham Flexner)가 발표한 플렉스너 리포트가 개혁의 기초를 놓았다. 의과대학 입학 자격을 최소한 학부 과정을 졸업한 자들에게만 주어서 의과대학 입학생의 입학 수준을 높였다. 전국 의과대학의 교육 실태를 보고서를 통해 공개했다. 이를 통해 부실한 의과대학이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난립한 의과대학들이 외부로 알려졌고, 미국 의과대학의 50% 가량이 문을 닫았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각 나라마다 자국의 의과대학의 질을 유지하고 세계 의학 기준에 맞추기 위해 의학교육평가원 같은 기구를 만들어 의과대학의 교육 수준을 관리하고 있다.

의료개혁의 역사

BC 4세기에 만들어진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최초의 의료개혁 선언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지식인들조차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구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고로 지금 의과대학 학생들이 임상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흰 가운을 입는 의식인 화이트코트 세레모니(White Coat Ceremony)때에 낭독하는 선언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개정한 제네바 선언(1948년)이다.

처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만들어질 당시 상황은 매우 혼란하고 비윤리적인 일이 다반사였다. 낙태와 안락사를 빈번히 행하고, 환자와의 성관계를 갖기도 했으며, 환자의 비밀을 지켜주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을 가르쳐 준 스승에 대한 예의나 도의를 져버리는 일도 발생하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 일가에서는 이렇게 의료의 가치와 윤리가 위협받는 상황에 저항하기 위해 의료개혁의 내용을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후로도 환자에게 불이익이 가거나, 의술이 상업화되는 현상이 발생할 때마다 의사들이 앞장서서 의료의 가치와 윤리가 위협받는 상황에 저항했다. 결과적으로 비상식적인 행위가 근절되고 상식적이고 전문적인 의학이 발달하였다.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윤리기준을 마련하여 지켜온 자율규제(Self-Regulation) 관례는 의사면허 자격과 유지, 징계, 보수교육 등을 담당하는 면허관리기구(Medical Regulatory Authority)가 만들어지는 토대가 되었다. 의학의 발전은 의사들의 자발적인 의료개혁의 힘든 투쟁 속에 진행 되어왔다.

대한민국 정부와 여당, 의학교육 역주행에 올인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의학교육의 수준과 교육여건을 평가하여 의학교육의 질적인 향상을 추구하고 사회적 책무성을 담당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이 2003년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우리나라 모든 의과대학 교육은 의평원의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의과대학이 의학교육의 수준과 질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평가 기준을 만들어 평가하고 있다. 만약 평가 대상 의과대학이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학생들의 의사국가고시 응시 자격이 없어진다. 연이어 평가에 통과하지 못하면 교육역량이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의과대학을 폐교시킨다. 실제로 2018년 부실의대로 판정된 서남의대를 폐교시켰다.

현재 의평원 기준 중 정원의 10% 이상 증원이 있으면 증원된 인원을 교육할 역량과 시설이 갖추어진 상태인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현재 추세라면 교실도 교수도 부족하기에 평가 기준 미달이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교육부와 복지부는 의대 신입생 증원을 강행하고 있다. 교육부가 앞장서서 그간 없었던 조건을 달아 의평원에 대한 인정기관 재지정 압박까지 가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정책의 걸림돌이 된 의평원의 평가기준을 법으로 무력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의과대학이 평가 기준을 갖추지 못했어도 예비 계획서만 제출하면 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입법을 하겠다고 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나폴레옹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기준을 마음대로 바꾸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의학의 가치와 윤리를 위협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고효율을 저효율로 질서와 기준을 혼란과 무질서로 만드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수 세기에 걸쳐 이루어 놓은 치열한 의료 개혁의 흐름을 거스르고, 역주행하려고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흑역사를 만들고 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놓아두고 역주행하는 법을 강행한다면 대한민국 의과대학 교육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정치가 의학을 훼손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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