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서도 마음속에 될까? 안될까? 자꾸 의심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꾸 의심이 생기는데 어떻게 합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선택에 있습니다. 내가 믿겠다고 선택을 하면 믿는 것입니다. 내가 의심하겠다고 생각을 하면 자꾸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사나 죽으나 믿겠다. 나는 의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음에 결정을 내리면 의심은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 버리고 믿음으로 설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여기에 의심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의심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의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기도를 성령으로 깊게 하면 기도 응답도 바로 해주시고, 기도를 적게 하면 응답도 더디게 됩니다. 기도를 길게 하면 하나님의 역사도 길어지게 되지만, 기도를 짧게 하면 하나님의 응답도 더디오는 것입니다. 기도를 깊게 오래 하면 하나님의 깊은 진리와 지혜를 깨달아 알게 되지만, 기도를 얕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강요셉 – 성령으로 기도 하는 법
감사란, 하나님의 피조물을 존중하여 돌보고, 내게 있는 양식에 겸허히 만족할 줄 아는 은혜의 문법이다. 우리가 지구를 돌보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적절하고 온당한 길이기 때문이다. 은혜와 감사의 현상학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사실은 은혜로운 베풂을 경험한 사람은 당연히 기꺼워하며 감사와 돌봄으로 응답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특히 귀한 선물이나 꼭 필요한 선물을 받았을 때 그에 적합한 반응은, 선물을 준 이에게 감사하는 것과 그 선물을 돌보는 것이다. 은혜는 감사를 낳으며 감사는 돌봄을 낳는다.
스티븐 보우머 – 주님 주신 아름다운 세상
그 회복이 이루어지려면 또 다른 한 쌍의 선지자가 나타나야만 했다. 그중 첫 번째 선지자는 모세나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광야의 사람으로서,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그 나라의 사악한 통치자와 대결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선지자는 여호수아나 엘리사와 마찬가지로 요단 강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받았으며, 이 적을 행하고 창녀들과 적국에 속한 군인들을 환대해 주셨다. 그분은 나환자들을 고치고 백성들에게 기적적으로 음식을 공급해 주셨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도시들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며 죽은 자들을 소생시키셨다. 그리고 여호수아나 엘리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분의 이름 자체에 구원의 의미가 있었다. 그 이름은 예수Yeshua, 곧 ‘주님이 구원하신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나 엘리사의 경우와는 다르게,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필요로 하는 그 위대한 구원을 실제로 가져올 능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천사는 앞서 요셉에게 이렇게 선포했던 것이다.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알라스테어 로버츠 & 앤드루 윌슨 – 출애굽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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