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의 정국교를 건너면 흰색으로 빛나는 유격부대 전적 위령비를 만난다. 6.25사변 때 유격전을 벌이다가 산화한 유격부대원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43개 유격부대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한국 반공유격대의 백령기지 산하 24개 부대, 강화기지 산하 8개 부대, 속초기지 산하 5개 부대, 덕소 공수기지 산하 4개 부대와 호림 유격부대, 영도 유격부대 등이다.
유격부대는 크게 3개 형태로 활동했다. 첫째, 전쟁 초기 경기, 강원 지역에서 학생, 청장년, 애국단체원 등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병대 성격의 단체이다. 둘째, 북한 지역에서 반공 활동을 하다가 무장투쟁으로 전환된 단체로, 북한 지역에 남아 유격전을 벌이거나 남쪽으로 탈출하여 서해안 지역에서 유격전을 전개한 단체이다. 셋째, 적의 후방교란 목적으로 국군이 편성, 운용하였거나 미군이 지원, 활용한 유격부대다. 위령비에 새겨진 43개 유격대 중에는 맥아더 사령부와 미 중앙정보국 산하의 42개 부대와 호림유격부대가 포함되어 있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반공청년 단체들은 자발적으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강원 지역에는 대한청년단 북산면 지부, 화무결사대, 대한 구국단, 속초 반공청년단 등이 있다. 1950년 8월 초 춘천 남면 가정리에서 조직된 반공투쟁 공작산악대(대장 이승균) 80여 명의 대원 중 30여 명이 고흥 유씨 집성촌 사람들이었다. 식량 조달의 책임을 맡은 유봉상 대원은 의병장 유인석 선생의 후손이었다.
경기 지역에는 태극단, 인산의혈대, 서부결사대, 대한정의단, 강화유격대 등이 있다. 그중 1950년 6월에서 9월까지 3개월간 경기도 포천, 양주, 고양, 파주, 강화, 김포 일대에서 학생, 공무원, 근로자 등으로 조직된 200명 규모의 태극단은 북한군의 장비 수송을 저지하기 위하여 경의선 철도와 탄약고를 파괴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에서 활동하던 반공청년 단원들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중 황해도와 평안도 반공단체원 대다수는 주민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은월, 송화, 장연, 풍천으로 많은 피난민이 모여들었다. 송화 월사리에 집결한 피난민을 구조한 것은 현시학 함장이 지휘한 PC-704(지리산함)였다.
남쪽으로 탈출한 반공청년들은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강화도 등지에서 미군과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탈출하지 못한 일부 반공청년들은 황해도 구월산 등지에서 유격대로 활약하였다. 남쪽으로 탈출이 어려웠던 함경도 반공청년들은 국군 낙오자들과 함께 개마고원 유격대, 주을반공유격대, 고원청년유격대 등을 조직하였다.
1950년 8월 육군본부 직할로 유격대 사령부 을지병단, 결사유격대, 제9172부대 등이 일선 부대 단위로 유격중대가 편성되었다. 육군독립 제1유격부대(명부대)는 인천 상륙작전과 양동작전으로 전개된 영덕 장사동 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결사유격대는 강원도 연곡, 속사, 용대 등에서 활약했다. 그중 하나가 채명신 중령이 이끈 백골병단이었다. 육군은 6.25사변 이전에 북한의 게릴라 침투(10회 2.400명)에 대응하여 호림부대라는 특수부대로 편성하여 대북 군사 활동을 전개한 적이 있었다.
미군은 서해안으로 탈출한 반공청년들을 주축으로 레오파드 기지(백령도), 울팩(강화도), 커크랜드(주문진)를 세웠다. 1951년 7월 제8240부대를 통합하여 동키24, 울팩8, 동해안유격4, 제1공수유격3 등으로 부대를 체계화했다. 병력은 2만여 명이었고, 자생유격대와 국군유격부대와 달리 중화기로 무장하게 하였다. 미 CIA는 첩보부대로 영도유격대를 운용하였다. 유격대는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며 군수물자 집적소, 철도, 교량 등을 파괴하고 피난민과 추락한 비행사 등을 구출했다. 특히 서해안 연안도서를 방어함으로써 백령도 등 서해5도를 사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8240부대 예하 40개 부대 2만여 명의 유격대원들이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서해5도의 섬들을 우리 땅으로 만든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구월유격부대에는 이정숙 여성대원과 200여 명의 여성 유격대원이 있다. 이정숙 대원은 김종벽 유격부대장과 부부로서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이렇게 유격대원은 부부가 24건, 형제가 12건의 사례가 있으며, 구월산의 이영일, 영이, 영우, 영걸, 영익 5형제가 있다.
이범희 목사(6.25역사기억연대 부대표, 6.25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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