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인간은 상상하는 존재이다. 상상하는 능력으로 정신세계와 문명세계를 만들어 왔다. 과학의 발전도 상상으로부터 시작하여 현실화시킨 경우가 많다. 우주를 향한 진출은 순수하게 상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우주선을 만들고 달에 착륙했다. 이제는 화성을 향해 우주선을 보내고 있다.

상상력 가운데 “지리적 상상력”이 있다. 인간은 특정한 공간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자신만의 고유한 장소에 가면 상상력이 최고조에 도달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위대한 예술과 문학이 탄생한다. 소설, 시, 노래, 그림, 연극, 영화 등. 어떤 지리적 공간에 머물 때 인간은 행복을 누린다.

10여 년 전에 김이제 교수는 <내가 행복한 곳으로 가라> 라는 저서에서 처음으로 “지리적 상상력”이란 말을 사용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날 때 행복해진다. 이 책의 부제는 이랬다. ‘운명의 지도를 바꾸는 힘, 지리적 상상력’

전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를 저술한 조앤 K. 롤링은 험난한 인생의 고비를 거쳐 마지막 정착한 곳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였다. 그 곳에서 글쓰기에 좋은 카페를 만나 <해리 포터>를 완성했다. 이처럼 내가 행복한 공간은 내 운명을 바꾸게 한다.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향 진해의 초등학교 뒤편 해군 통제부의 환상적인 벚꽃 길. 한가한 시가지와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장복산의 능선과 해병혼이 새겨진 시리봉. 여름방학이면 하루에도 두 번이나 찾아갔던 속천 해수욕장과 푸른 바다. 문학소년의 꿈을 안고 친구들과 오르내리던 넓은 아스팔트 거리.

또 다른 공간은 용원에서 나룻배를 타고 부산과 가덕도를 왕래하던 여객선에 옮겨 타고 갔던 대항리 작은 섬마을. 신학교 지망생이라는 이유로 섬마을 작은 교회를 섬기며 산으로 바닷가로 동네 아이들과 지치도록 뛰어 놀았던 동화 같은 공간.

또 한 곳은 필자가 최근에 잠시 들렀던 잊히지 않는 서정적인 공간 남해이다. 남해를 순환하는 도로를 돌아보며 제주도와 같은 정취를 느꼈다. 해안을 따라 걷는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낯선 공간 같지 않은 느낌은 독일마을에 들어섰을 때에도 동일했다. 남쪽 높은 언덕에 자리한 전망대에 서서 바라보는 수평선. 내 고향 남쪽 바다. 바로 그 공간이다.

그런데 아쉬운 건 일전에 찾아 가 본 고향 진해는 옛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정감이 어린 공간이 아니었다. 근대화로 도시가 개발 확장되어 바닷물은 짙은 황토색으로 변질되었고 공기는 오염되어 청정도시가 아니었다. 여느 신흥도시 같았다.

가덕도는 부산에서 시작되는 거가대로와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도시화가 되면서 대항리 마을은 통째로 사라지고 말았다. 가덕도 북부 선창에서 걸어서 두 시간을 산 넘고 들판을 지나야 갈 수 있었던 그 작은 동화 속 마을은 사라졌다.

그나마 남해를 돌면서 아직 마음의 고향처럼 남아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호수처럼 잔잔하고 추억이 일렁이는 바다가 있는 공간. 그 곳에 서면 나의 상상력은 날개를 단다.

하여 추억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을 우리는 남겨둘 순 없을까? 개발도 필요하고 도시 재생도 필요하지만 어떤 공간은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있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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