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급변하는 세태를 어찌 따라잡을 수 있을까? 노년기를 살아가는 자들의 과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아온 만큼의 관습과 취향에 푹 빠져 묵은 것이 좋다는 노년기.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기에 너무 벅차고 힘겹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세상이 이리도 급속하게 변화할 줄 짐작조차 못했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놀이만 해도 달랐다. 사방 치기, 땅따먹기, 자치기, 술래잡기 등. 인공적인 장난감 없이도 자연과 생활 속에서 소도구를 찾아 창의적으로 이용하며 놀았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장난감 백화점에는 장난감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손주들을 위해 갔다가 경제적 부담감만 잔뜩 받고 슬그머니 되돌아 나온 적이 있다. 요즘 아이를 키운다는 건 옛날과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2천 년 전 이스라엘로 돌아가 보자. 당시 유대 종교의 눈으로 볼 때 새 교훈을 설파하는 예수는 기존종교 지도자들의 위협이 되었다. 그들 눈으로 볼 때 예수는 신성 모독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 당시 사회 지도자인 랍비의 가르침과도 달랐다. 율법의 재해석은 충격 자체였다.

한번은 매국노로 죄인으로 취급받던 로마를 위해 고용된 한 세리의 집에 예수가 초대를 받았다. 세리는 앞서 예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아 감사의 뜻으로 잔치를 배설했다. 이때에 유대교 지도자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몰려와 예수에게 항의했다. "네가 진정 랍비라면 어떻게 공공연하게 죄인의 집에 와서 그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가?"

예수의 답변은 오늘날까지 언급되고 있는 유명한 이 한 마디였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다. 만일 그리하면 새 포도주가 낡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다. 이는 묵은 것을 좋아하기에."

노년의 일상을 돌아보면 이 말에 수긍이 간다. 묵은 부대에 새것을 감당할 수 없다. 묵은 것을 좋아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는데 새것을 원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묵은 포도주는 사라져 가고 새것이 넘쳐나게 몰려오고 있음이다.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오늘 날 이런 괴리를 목격하고 있다. 노년기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정세의 한 현상을 보자. 이스라엘의 눈에는 왜 하마스와 헤즈볼라, 팔레스타인과 이란만 보이는 걸까? 어린아이와 여성들과 피난민 행렬과 미사일 폭격으로 애매히 죽임을 당한 민간인들은 보이지 않을까?

그들은 묵은 포도주에 취해 있어 그런 건 아닐까? 모세를 통해 받은 율법에만 취해 새 교훈을 거부한 조상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유엔을 통해 결의문을 채택해서 각 나라에 제동을 건다. 기후 행동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한 행동을 요구한다.

새 부대를 준비하지 않으면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다. 새 포도주와 같은 새 문명이 다가온다. 보통 속도를 넘어 급속하게 다가온다. 아직 묵은 것에만 취해 있다면 새것을 담을 수 없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를 요구한다.

새 부대는 새 마음가짐이다. 새 마음은 더불어 함께 평화를 추구하려는 마음이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환대하는 것이다. 이 새 부대가 먼저 준비되기를 기대한다. 국제 관계나 국내 정치에도 먼저 새 부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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