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에서 사울왕과 다윗은 라이벌의 구도로 소개되어 있다. 둘 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사울왕의 죄와 다윗의 죄 중 누구의 죄가 더 클까? 사울왕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욕심 때문에 불순종했고, 선지자 사무엘이 와서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자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변명까지 늘어놓는 죄를 범한다.
강력한 왕권에 취해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던 다윗은 충직한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자신이 지은 죄를 덮기 위해 우리아를 죽이게 하는 죄를 범한다.
둘 중 누구의 죄가 더 컸나? 다윗이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고 변명까지 하는 죄를 범하긴 하지만 남의 아내를 범하고 그녀의 남편을 죽이라는 살인교사의 죄를 범한 적은 없다. 다윗의 범죄가 훨씬 더 무겁고 크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한 이후에 나타난 두 사람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리 구분된다. 우선 사무엘로부터 심판을 선언받은 사울의 반응을 보자.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삼상 15:30).
이 한 구절에 사울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가 몇 개나 나오는지 헤아려보라. ‘내가’, ‘내’, ‘나를’, ‘나와’, ‘내가’ 무려 5개의 말이 연속적으로 언급되어 있음을 보라. 사울이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임을 잘 알 수 있다. 사무엘 선지자의 심판을 선고받은 사울이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형벌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송구한 마음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안위가 더 중요했음을 엿볼 수 있다.
반면 나단 선지자의 심판을 들은 다윗의 반응은 사울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시 51:4절을 통해서 확인해보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여기에 ‘주께만’, ‘주의’, ‘주께서’, ‘주께서’라는 말이 보이는가? 다윗이 우리아나 그의 아내 밧세바에게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에게 지은 죄라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긋났기 때문에 발생한 것임을 다윗이 잘 파악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죄를 범했음을 인식한 다윗의 모든 신경이 사울왕과는 달리 자신의 위신이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께 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게 ‘진정한 회개’이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고 자신의 명예가 실추될까봐 두려워했으나,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가뜨린 자신의 죄와 허물이 한스러워 슬퍼했다.
‘참 회개자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인간의 한계 때문에 누구나가 다 죄를 범할 수 있다. 물론 죄를 짓지 않음이 우리의 최우선의 관건이요 과제이다. 하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하나님 앞에서 원치 않는 죄를 짓고 불순종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울왕이 아닌 다윗이 우리가 따르고 본받을 모범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내가’”가 아니라 “‘주께서’, ‘주께서’”라는 다윗의 회개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범답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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