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경 선생
최한경 선생의 증손자녀들이 세운 추모비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최영철 전 국토교통부 차관보(잠실교회 안수집사)의 증조부 최한경(崔漢京) 선생(1856~1932)이 일제 강점기인 1921년 나라에 흉년이 들었을 때 전남 담양군 대전면 1,194호 농가의 호세(戶稅, 주민세)를 대납해 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김철영 목사가 최근 후손들로부터 최한경 선생의 미담을 듣고 전남 담양군 대전면 중옥리 396번지에 소재한 최한경 선생의 생가와 1923년 대전 면민들이 최 선생의 은덕(恩德)을 기려 세운 송덕비 현장을 찾아 선행을 직접 확인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의 30대 후손인 최한경(崔漢京) 선생이 살았던 집은 아들 최순호 선생에 이어 손자 최창언 선생(교육자, 최 전 차관보의 부친)이 살았던 집으로 100여 년 전에 지은 집이다. 당시는 초가집이었으나 1970년 새마을운동 당시 초가지붕을 슬레이트지붕으로 개량했지만 목재는 처음 건축할 때 사용했던 것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 집에 들어서면 마당 오른쪽에 <최씨 삼세 유장비(崔氏 三世 遺庄碑)>가 세워져 있다. 최한경 선생이 남겨준 전답(田畓) 등 소유했던 재산 내용이 쓰여 있다. 최한경 선생은 일제 강점기 전답을 많이 소유한 천석꾼이었다고 한다.

중옥리에서 출생해 평생 그 마을에서 터전을 일구었던 최한경 선생은 1921년 흉년이 들어 지역민들이 호세(戶稅, 주민세)를 납부하지 못해 곤란한 상황에 처하자 1,194호 농가의 주민세를 대납해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194호 농가의 주민세 일천삼백오십구원구십전(1,359원 90전)에 해당하는 쌀 271석을 대납해 해결해 주었다. 당시 쌀 한 석은 5원이었다. 쌀 한 석은 두 가마니 160킬로그램이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환산해도 엄청난 금액이다.

최한경 선생의 이웃 사랑에 감동한 지역민들은 1923년 3월 20일 대전면 농협 앞에 ‘송덕비’를 세워 이웃 사랑을 기리고 있다.

중옥리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대전면 대치리 870-4에 소재한 대전농협 앞에는 <慶州 後人 崔漢京 施惠碑>가 있다. <시혜비>는 “열심과 근면, 검소 정신으로 빈손으로 시작해 가업을 일으켜 1,100호 주민세를 대신 담당했다”는 내용이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세워진 송덕비는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 파손되어 대전면에서 중수(重修)했다. 송덕비에는 최한경 선생의 주민세 대납에 대해 “본연의 천성에 善心(착한 마음)이 發露(발로)된 바”라고 쓰여 있다.

이어 “신문지상으로부터 사회 공중에 반포되어 우둔하고 욕심 많은 자로 하여금 선심을 고취케 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면민 일동이 그 은혜에 감사하여 만구일성(萬口一聲)으로 칭송하고 1923년 6월 15일에 이 기념비를 세워 삼가 모든 사람이 송덕한 공의(公議)로써 불망의 명성을 영원히 전하노라”고 쓰여 있다.

최한경 선생의 증손자녀들(고운 최치원 선생 선조 35세손(충열공 27세손) 장증손 영선, 영옥, 영철, 원경, 영준, 영엽, 황자, 호자, 영신)은 지난 2008년 10월 3일에 송독비 옆에 추모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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