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자신의 몸 또는 몸매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예를 들면 자신의 외모나 체격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행감과 우울증을 느낀다. 현대인들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화장은 물론 미용성형이나 체중감소에 열심이다. 요즈음 한국에서도 미용성형 열풍은 세계적이다. 이런 경향성은 남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남자들은 자신의 몸이 늘씬하고 “근육질”일 때 더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정신상태는 자연스러운 것인가 병적인가?
젠더불쾌증은 트랜스젠더와 젠더퀴어를 의미한다. 이는 자신의 몸이나 성기의 형태가 자신의 젠더정체성과 맞지 않아 불쾌를 느끼는 상태이다. 여자의 몸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남자라고 생각하거나, 남자의 몸을 가진 사람이 자신은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잘못된 몸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며 불행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 자체는 정상이지만, 그 불쾌증을 느끼는 것은 몸 때문인 셈이다. 몸, 즉 성적 몸에 대한 불만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몸을 수술로 또는 반대성 호르몬을 사용하여 반대성의 몸으로 바꾸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랜스젠더는 신체변형장애(身體變形障碍 body dysmorphic disorder) 같아 보인다. 신체변형장애는 자신의 외모나 체형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극단적 장애이다. 그 증상은 정상 용모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용모나 체형에 대해 추형이나 이형, 결손 등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사소한 외모의 문제를 과장되게 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런 생각에 강박적으로 “집착”해 있다. 그들은 미용성형 수술을 반복하지만, 결과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그중 특정형의 하나로 근육변형증(muscle dysmorphia)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신체가 아주 작고 말랐으며 근육이 불충분하다는 생각에 집착되어 있는 상태이다. 대부분 남성에서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들은 실제로 정상 체격이거나 오히려 근육질인 경우도 있다. 그들은 과도하게 근육운동에 집착하며, 심지어 근육을 키우는 합성 스테로이드 제제 같은 물질을 남용하기도 한다. (이에 중독되면 광기가 나타날 수 있다) 성소수자 남자들에게 근육이형증이 흔히 관찰 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신체변형장애는 강박장애이고 트랜스젠더는 정체성 문제로서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신체변형장애는 몸 상태가 바뀌어도 호전하지 않지만, 트랜스젠더는 이성복장이나 성전환 시술로 불쾌증이 살아진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성전환 시술로 처음에는 불쾌증이 해소되지만, 결국 몸에 대해 불쾌증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고환이나 난소를 제거하고, 반대 성 호르몬을 섭취한다고 해서,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의 X, Y 염색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벅지의 피부를 이식해서 성기 모양을 성형 수술을 해 주어도, 그것은 진정한 성기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런 의료적 시술은 멀쩡한 몸을 훼손하는 것이다. 타고나는 몸이 무슨 죄가 있는가?
그래서인지 트랜스젠더 옹호 학자들도 트랜스젠더와 신체변형장애 두가지가 겹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실제로 이 두 가지 장애를 같이 가진 사람도 있다. 원인이나 증상에서 상호 연결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신체변형장애는 몸의 일부에 포커스를 두고, 젠더정체성장애는 성기관에 포커스를 두지만,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심리적 문제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아무리 그래도 미국정신의학회는 젠더“불쾌증”은 정신장애가 아니라고 말한다.
젠더불쾌증은 심리적 “정체성” 문제이다.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개념이다. 정체성 형성은 생물학적이 아니라 대개 정신사회적 발달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진다. “정체성”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시기가 청소년기(사춘기) 이다. 이때 특히 성 정체성(나는 여자다, 또는 남자다) 때문에 많은 청소년들이 위기를 겪는다.
소아가 자라면서 여러 다양한 정체성(identity)이 생겨나기도 하고 살아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젠더정체성에도 유동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몸과 섹스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성정체성 이외에도 여러 정체성이 있다.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나는 민씨 사람이다), 학교 정체성(나는 연세대학교 학생이다), 인종정체성(나는 황인종이다), 민족정체성(나는 한국인이다), 정치적 정체성(나는 보수파이다), 종교정체성(나는 크리스천이다), 등등 “다양”하다. 대개 타인들 즉 부모나 사회가 지정하는 것에 따라 정체성을 가진다. 즉 부모가 너는 민씨 가문이다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목사님이 당신은 이제 기독교인입니다라고 말해준다. 이처럼 정체성은 가지고 태어난다기보다, 주어진 것을 나의 신원(identification)의 하나로 확인(identify)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성혁명적 젠더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젠더정체성은 “자기결정권”이라는 인권에 따라 “내가 선택한다”는 말이 유행이다. 대개 시스젠더는 자신이 선택한다는 개념없이 자연스레 자신의 타고난 섹스에 근거하여 부모가 지정한 성정체성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젠더불쾌증은 마치 어린아이가 현재 부모가 자신의 친부모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자연이나 성경과 어긋난다. 그러나 젠더이데올로기에 의하면, 그가 속한 사회(공동체)가 합의하고 인정해 주면, 부모나 자연이나 성경은 무시해도 된다. 그러나 자연을 무시하면 병이 생긴다.
사람이 이런 생물학적 사실과 다른 정체성을 선택해도 과연 괜찮은가? 어떤 남자가 나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고 말하면 주민등록증의 성(젠더) 칸에 X라고 기록해 주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나는 사람이 아니고 로봇이다라고 말하면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 도대체 어떤 세상이 그가 로봇이라는 것을 누가 인정(identify)해 줄까? 그것은 세상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 자신의 느낌일 뿐이거나, 강박증이거나 인지장애이거나 망상을 가진 것이다. 이는 무슨 궤변으로 설명해도 합리적일 수 없다. 근본적으로 세상에는 자신밖에 없다는 자기애적(narcissistic) 발상일 뿐이다. 그러나 현대의 지배적 엘리트들은 그들만의 “자폐증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트랜스젠더를 인정하자고 주장한다. 보통 대중들은 이들 엘리트의 주장에 대해 잘 모른채 그런게 진보하는 것인가 하며 따라가고 있다.
LGBTQ 옹호자들은 동성애나 트랜스젠더가 (어려서부터 그랬다고 하며) 타고나는 것이며, 그래서 정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증거를 생물학, 유전학, 의학 등 과학에서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런 유전자는 아직 발견되고 있지 않다. 원래 정체성이란 정신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유전자와는 상관이 없다.
자기결정권, 인권, 다양성, 평등, 포용도 좋지만, 어떤 최소한의 질서와 한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기준을, 우리 크리스천은 성경 말씀이라고 믿는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녀로 창조하셨기에 성정체성에 대해서는 남자와 여자만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제3의 성(젠더)은 성경에도 어긋나고 자연에도 어긋난다. 이를 거스르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는 병이 오고, 사회에도 카오스가 온다. 그래서 젠더불쾌증은 병적인 상태인 것이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연세카리스가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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