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조간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오피니언 칼럼과 사설의 제목에 “극한”이라는 단어를 큰 타이틀에 여과 없이 그대로 사용했다. 극한 호우, 극한 갈등, 이에 준하는 용어로는 살인과 다름없는‥ 생명 경시, 나쁜 임대인에 혈세를‥ 퍼준 전세대책 등.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은 바쁘면 신문의 타이틀과 중간 제목을 훑어본다. 나처럼. 그런데 언론사는 시민의 눈을 끌기 위해 극단적인 단어나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가. 물론 삶의 현장이 그렇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매일 쏟아지는 폭우처럼 뉴스의 홍수 속에서 더 질식하게 하지 않는 길은 진정 없을까?
내가 듣고 보고 느끼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는 걸 안다. 한국의 국회를 보라. 여권 안에서의 갈등, 야권 안에서의 일인 독주와 힘겨운 제동, 미국 정치판을 보라. 대선 가도의 상황이 세기의 딜레마로 세계인의 눈에 비친다. 암살 기도와 초고령자의 대결 구도, 미국다운 프런티어 정신은 어디로 갔나?
한국 물가는 잡힐 줄 모르고 서민은 계속 장바구니 걱정이 쌓여만 간다. 가족을 먹이기 위한 고투 아닌가. 대기업은 살아나고 소상인과 중소기업은 폐업을 고려한다. 중국의 대형 유통기업의 한국 상륙은 막을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골목 상인들은 이미 혼수상태이다. 국제적 경제 상황도 다국적 기업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을 바라보는 각 나라의 경제 촉각은 더 예민해져 간다.
한국 극장가에는 또 다른 이변이 연출되고 있다. 그건 '인사이드 아웃 2'라는 영화가 불러온 태풍급 현상이다. 사춘기 아이의 성장통을 다룬 특이한 감정 혼란을 다룬 작품인데 이 애니메이션을 보러 20-40대 관객이 몰린다고 한다. 아마 곧 천만 관객을 돌파할 기세이다. 요점은 ‘불안’이라는 감정이 감정 본부를 장악해 엉뚱한 행동을 하게 한다. 결과는 ‘기쁨’이라는 감정이 이를 용감히 자기를 던져 감정을 조율해 행동을 시정하게 만든다. 왜 어른들이 이 주제에 반색하는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어른과 아이들 없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이다. 36개월 된 아이를 지우는 생명경시 소식, 중등생이 성폭력에 가담하고, 입시지옥을 벗어나 보려고 마약에 노출된 청소년들, 영끌로 투자한 부동산이나 주식과 코인이 한순간 눈 녹듯 사라지는 걸 지켜본 가난한 청년 가장들, 이 틈새에서 목숨을 담보 삼아 3D 직종에 투입된 위험한 근로 환경의 외국인 근로자들.
어디를 둘러보아도 불안이 우리를 지배한다. 그러니 극장에라도 가야 심리적 치유나 희망을 얻는 게 아닐까? 극한 상황에 늘 노출된 우리의 자화상을 매일 바라본다. 답은 진정 없는가?
제발 정치권은 협업 정신을 가동하라. 불안한 정쟁을 줄이고 신사답게 행동하라. 정책으로 대결하라. 국민의 불안한 심리를 제대로 읽기 바란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가만 아니라 절약과 검소한 삶을 사는 시민 파워가 필요한 때이다. 재래시장과 골목 상권을 살리는 도시 재생에 시민 파워가 절실하다.
정서적 돌봄을 위해 공적 기관만 아니라 종교계도 나서길 바란다. 불안 해소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 누구나 이용하게 해보자. 불안은 최악의 바이러스이다. 그대로 둔다면 극한 세상이 초극한 사회로 갈지 모른다. 교회는 불안 해결을 위해 교회 문을 더 활짝 개방하자. 마치 주중에 빈 주차공간을 이웃을 위해 개방한 교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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