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존 웨슬리의 채플’(John Wesley Chapel)을 방문했다. 그가 사역했던 교회와 기념관과 무덤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에 오다 보니 생가 속 방문은 불가했다. 작년 이맘때 18명의 팀을 인솔해서 왔을 땐 생가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때 잊을 수 없는 것 하나가 있다. 웨슬리가 잠들곤 했던 침대가 있는 방 안에는 성경책이 얹혀있는 작은 책상 하나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 방석 하나가 놓여있다.

이 방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릎을 꿇은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존 웨슬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이 무릎을 꿇고 기도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웨슬리 채플에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한 바람에 그의 생가는 문이 닫혀서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무엇보다 감리교 목회자 세 분에게 웨슬리의 생가 방문은 남달리 의미 있는 기회였을 것이기에 나 또한 아쉬움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함께 탐방에 동참 중인 감리교의 대표적인 목회자인 유기성 목사님은 웨슬리가 임종하기 전까지 11년 4개월을 살다 가신 집에 들어가 보지 못한 아쉬움을 페북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다.

“아쉬운 것은 존 웨슬리의 마지막 생애 11년 4개월을 지낸 웨슬리의 집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이 늦어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집 안을 보았으면 했던 것은 빌리 그래함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1940년 신학생 시절, 교수님의 인솔로 영국의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을 왔었다가 존 웨슬리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웨슬리의 침실의 카펫에 두 개의 움푹 패인 자국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그 기도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Do it again, Lord. Do it again!’이라고 기도하였다는 일화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게 기도하고 싶었지만, 웨슬리의 집 바깥 뜰에서 ‘주님, 존 웨슬리와 윌리엄 부스, 빌리 그래함에게 역사하신 일을 지금 저에게 다시 행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오히려 ‘네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존 웨슬리보다 더 인간의 삶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가 복음으로 사회를 변화시킨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주님으로부터 무엇을 들어야 하며, 웨슬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존 웨슬리는 지금 영국과 미국의 감리교회를 보면서, 아니 한국의 감리교회 보면서 어떤 마음일까?’ 이제 남은 한 주 동안의 영국에서의 여정 중에 제가 들어야 할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작년에 생가를 방문했을 때 보니 웨슬리의 침실엔 카펫이 아니라 나무가 깔려 있었다. 이전엔 카펫이 깔렸다가 너무 낡아서 걷어치워 버린 후 바닥에 나무만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처음부터 카펫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거기 남아 있는 건 두 무릎 자국이 나 있는 카펫이 아니라 방석이었다.

‘18세기 영국의 위대한 복음 전도자요 감리교의 창시자이자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었던 존 웨슬리의 승리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역사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웨슬리는 말을 타고 40만km를 다녔으며, 4만 번 이상의 설교를 했다고 한다. ‘존 웨슬리가 그렇게 위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그가 무릎에 깔고 기도했던 방석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그 방석은 웨슬리가 기도했을 당시 그가 갖고 있던 마음의 무게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지했을 것이다.

사역을 감당하다가 때로는 지치고 낙심하고 쉬 절망하는 오늘 우리에게 남은 사명을 활기차게 잘 지탱해나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모범이다.

웨슬리는 내가 방문했던 생가 자기 방에서 1791년 3월 2일, 87세의 일기로 다음과 같이 마지막 말을 내뱉으면서 세상을 떠났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

임종을 앞두고 웨슬리는 마지막 말을 전하기 위해 온 가족을 모았다. 그는 마지막 60초간 자리에 앉아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두 손을 높이 들고 마지막 숨을 모아 다시 힘주어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웨슬리는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그는 지금 그토록 사모했던 천국에서 영원 안식 중에 있다. 남은 건 후배들인 우리의 몫이다. 위대한 신앙적 선배들의 발자취를 잘 따라가기 위해선 부단히 무릎 꿇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새 힘을 공급받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국 기독교 유적지 탐방 이후 더욱 기도에 전념하는 삶으로의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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