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의 탄생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다’라는 의미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나의 아이들이 태어날 때 겪었던 체험은 그 말 그대로였다. 그 작은 핏덩어리가 주먹만 한 생명체에서 차츰 성장해 가는 모습은 한 마디로 환상적이었다. 신비롭게 일 년쯤 지나면 아장아장 걷는다. 금세 자라서 어린이집 가는 가방을 챙기고 아파트 맘스테이션을 찾아오는 노란색 버스를 타고 끊임없이 손을 흔들며 등원한다.
이런 아름다운 선택을 이제는 사치라고 부른다. 아무나 결혼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출산과 양육, 교육과 경쟁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낼 만한 경제적 준비와 단단한 마음을 먹어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결혼부터 심각하게. 생각하고 선택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지속 가능한 사회, 혹은 국가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선택한 파국과 소멸의 사회경제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자살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 김현성 작가는 우리 공동체의 선택을 ‘자살’이라는 단어로 압축해 표현했다. 우리는 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쇠락하기 시작하였는가? 왜 한국은 과거의 성장 속도만큼 빠르게 죽어가고 있는지, 망하기 시작한 근본적인 원인을 통계와 수치로 검증하고 있다.
그는 세 가지로 핵심을 찍어 말한다. 첫째, 경제적 불안정과 양극화; 비정규직의 증가와 고용 불안정, 심화되는 부의 양극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불안을 조성하고 공동체의 해체와 사회 구성원 간의 불신과 갈등을 야기한다. 둘째, 사회적 고립과 인간관계의 단절; 사회에서의 고립감과 외로움,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는 사회적 지지 시스템을 약화시킨다. 셋째, 문화적 압박감과 경쟁 사회; 한국 사회의 교육과 직장에서의 과도한 경쟁과 성공 중심의 문화적 압박은 개인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공동체의 결속을 약화시킨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우리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 돌파구는 무엇인가? 정부와 종교계 특히 교회는 어떻게 연대하여 문제를 감소시키고 사회적 지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 첫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교회와 정부는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직업 훈련과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정부는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 둘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는 커뮤니티 센터를 운영할 수 있다. 문화와 예술 활동, 스포츠 클럽 지원과 가족 상담 세션과 노인 돌봄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정부는 재정 지원과 프로그램 인증을 한다.
셋째 문제는 교회가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이다. 즉 정신 건강 캠페인과 상담, 직장인을 위한 스트레스 완화와 정신 건강을 지원한다. 개인의 영성 강화를 맞춤식으로 지원한다. 정부는 협력하여 근로 시간 단축과 유연 근무 정책을 시행한다.
말하기도 끔찍한 “자살”이라는 단어를 뒤집어 보자. “살자”가 아닌가. 그러니 이제 “제대로 사는 대한민국”으로 되돌려 보자. ‘잘 살아 보세’를 외쳤던 지난 세대가 ‘오직 돈’으로만 사회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면 이제는 국가 공동체의 소멸을 막기 위해 사회적 연대 강화와 삶의 질을 높이는 정신 건강 증진과 더불어 경제적 안정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는 오늘의 사회 공동체를 끌어안고 더불어 교감하고 더불어 씨름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위해 겸허하게 무릎을 꿇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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