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월 17일이면 성 패트릭 데이 (St. Patrick’s Day)로서 이곳 미국에서는 휴일로 지정이 되어있습니다. 이날은 5세기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 (St. Patrick, 386-461) 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초록색 계통의 옷을 입고, 세상은 온갖 초록으로 물을 들여 축제하는 날입니다, 특히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잎 클로버로 디쟈인된 초록의 물품들이 유난히 눈에 뜨여 인상에 남는 날이기도 합니다.
패트릭은 원래 로마계 브리티시 영국 사람입니다. 그의 나이 16살에 아일랜트 켈트족(Celts) 해적들에게 납치당해 아일랜드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비록 혹독한 노예 생활 속에 육체적 고통이 심했지만,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게일어와 아일랜드 관습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연세계를 보며 놀라운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몇 년 후 그는 노예 생활에서 탈출하여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자신을 힘들게 했던 아일랜드 켈트족을 품기 위해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하고 훈련을 받고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아일랜드에서 복음 전도자로 사역하며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후대에 성인의 칭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성 패트릭과 깊은 연관이 있는 우리의 찬송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Be Thou My Vision) 라는 곡입니다. 이 노래는 우리의 찬양 가운데 소망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찬송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 찬송에 보면 일반적으로 작곡가와 작사가의 이름이 속하는 곳에 "Irish Melody" 및 "Anonymous"와 같은 모호한 항목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그 내면에 바로 패트릭의 사역을 반영한 가운데 이 곡이 만들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AD 4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부활절 일요일에 현지 아일랜드 왕은 누구도 불꽃이나 촛불을 켜는 것을 금지하는 이교 드루이드 축제(Druid Festival)를 갖는 법령을 발표했습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도 존경하지 않는 패트릭은 이것에 반기를 세우며 목숨을 걸고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슬레인 언덕(Slane Hill)에 올라가 거대한 불을 피웠습니다. 고대 아일랜드 사람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은 모두 패트릭이 왕에게 반항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빛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빛이 어둠 속에서도 빛나며 오직 그분만이 찬양 받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몇 년 후, 무명의 작곡가가 이 패트릭의 영웅적 행위를 기리기 위해 멜로디를 썼습니다. 지금은 잊혀버린 작곡가가 "슬레인(Slane)"이라고 불렀는데, 패트릭이 빛을 발한 언덕인 슬레인 힐(Slane Hill)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곡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멜로디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전설적이지만, 가사 뒤에 숨겨진 역사는 조금 더 모호합니다. 전통에 따르면 6세기 아일랜드 시인 성 달리안 포게일(St. Dallán Forgail, C.560-640)이 성 패트릭을 기리기 위해 "Rop tú mo Baile"이라는 제목의 게일 시를 썼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포게일의 시 사본은 14세기에 나온 것으로, 저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포게일과 시를 연결하는 다른 역사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Be Thou My Vision" 가사의 실제 출처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여 이 노래를 "무명 (Anonymous)"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Slane"과 "Rop tú mo Baile"은 모호해졌습니다. 한 때 알려졌던 그들의 저자는 시간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성 패트릭이 슬레인 언덕에 불을 붙인 지 거의 1500년이 지난 1905년에 잊혀진 찬송가가 시간의 안개 속에서 다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25세의 대학생 메리 번(Mary Elizabeth Byrne, 1880-1931) )은 14세기 사본 "Rop tú mo Baile"을 발견하고 처음 영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의 유명한 찬송가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이 찬송이 주는 분명한 교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산 소망을 일깨우게 합니다. 벧전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에서 베드로는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있는 크리스천 유대인들에게 산 소망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 산 소망이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한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자 패트릭이 당시 서슬 퍼런 최고의 권위자 아일렌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리스도 복음의 횃불을 환히 밝히게 된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C.S.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1898-1963) 는 기독교의 자기 부인은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무감한 상태(Apathy)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합법적인 목적들을 추구하되 하나님을 그 보다 앞세울 준비가 되어있는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보면 이 루이스가 말하는 이론이 성립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고통 속에 절규하며 “내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 26:39절 중반) 기도합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께서 하나님의 원리에 절대 순종하며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절 후반) 고백하는 이론에서 말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산 소망을 소유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참 소망을 붙들고 주어진 일들에 열심히 노력하며 모든 조건에서 평화를 만들고, 감사를 만들고 그리고 소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비록 환경이 평화를, 감사를, 그리고 소망을 고백할 수 없는 환경일지라도 말입니다. 이 때 우리는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Be Thou My Vision) 라는 찬송을 진정성 있게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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