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초기 불교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그런 초월적 성격의 종교가 아니었다.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한 것인데, 그의 가르침은 전혀 초월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종교의 초월적이고 신비한 성향을 배척했다. 이것이 바로 붓다의 근본 가르침이요 초기 불교의 성격이다. 기독교는 유신론, 유아론, 내세 신앙, 창조, 필연 등을 믿고, 영의 세계를 인정하는 신비주의 종교이고, 붓다의 사상은 무신론과 무아론이며, 내세 신앙이나 영적 세계를 부정하고 오로지 물질세계만을 인정하는 자연 과학적인 사상이다. 기독교와 붓다의 사상이 양립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두 주장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주제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냐 붓다의 사상이냐의 문제는 선택과 믿음의 문제이지 과학적인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성민 – 인간 붓다와 신 예수
사순절이 시작된다. 이 절기는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과 함께하는 때이다. 기도하고 금식하는 때이고, 그리하여 주님을 따라 예루살렘과 골고다를 거쳐 죽음을 이기는 최후 승리의 자리로 나아가는 때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마음이 나뉘어 있다. 진심으로 주님을 따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욕심도 좇고 싶다. 특권과 성공과 명예와 쾌락과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라고 속삭이는 온갖 목소리에 귀가 솔깃하다. 그런 목소리를 차단하고 주님의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이도록 도와주소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선택하라고 나를 부르시는 그 음성에만 집중하게 하소서. 분명히 사순절은 내게 아주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삶의 매 순간 주님의 길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생각, 주님의 말씀, 주님의 행동을 선택해야만 한다. 언제 어디서든 선택이 따 르지 않을 때가 없다. 그런데 나는 주님을 선택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산다. 주님, 부디 가는 곳마다, 순간마다 저와 함께해 주소서. 이 기간을 충실하게 살아갈 힘과 용기를 부어 주소서. 그리하여 주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새 생명을 부활의 아침에 기쁨으로 맛볼 수 있게 하소서.
헨리 나우웬 –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입니다. 해야 되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가난하고 권리가 없는 분들의 편에 서는 사람! 자발적으로 을이 되는 사람!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는 사람! 성령 받은 사람들이 보여 주는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 이런 것들이 삶에 은근히 녹아 있는 사람! 자기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율법주의에 근거한 근본주의에서는 절대 보여 줄 수 없는 열매들입니다. 지금껏 우리는 바울에게서 여러 권면을 들었습니다. 일관된 관점은 공동체를 세우는 데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므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큰 낭패를 볼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선한 일, 선한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공동체를 세워 가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고 지치기 쉽습니다. 특히 결과가 바로 보이지 않을 때 힘이 듭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주시는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김도현 – 복음의 진리, 갈라디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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