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합동총신 증경총회장 최철호 목사
최철호 목사(한국교회연합 바른신앙수호위원장, 예장 합동총신 증경총회장) ©합동총신

2024년 새해 벽두부터 주요 언론들의 최대 관심사는, 국내 정치를 제외하면 단연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이다. 9일부터 시작된 미국 라스베가의 ‘CES(Consumer Electronics Shaw) 2024’에 대하여 각 신문은 여러 면을 통째로 할애 장식하고 있다. 동 전시회에 150개국 4200여 기업에서 출품한 제품에 대하여, 앞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확산되면서 인간 삶의 형태와 질을 바꿀 신기술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면서부터이다. 사람들이 AI에 기대하는 수준은 개선이나 변화 정도가 아니라 변혁이다. 인류의 탄생 이래로 인간이 수행해 오던 일들을 인간보다 더 우수한 지능을 갖춘 물질(AI)인 인조인간이 대신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적응해 왔던 생태 환경의 혁명적인 변동을 의미한다. 그런 와중에도 AI가 할 수 없는 분야의 거친 노동에 대하여, 오히려 노동자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그것은 실없는 소망일뿐이다. 그런 세상에서 절대다수의 인간들은 어떤 형태로 삶을 영위하게 될까?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인간의 정신(Intelligence)은 어떻게 변화할까?

아뷥월은 가나안 역법이고, 니산월은 히브리 역법이다. 양력 3,4월에 해당하는 이 역법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원년에 적용되었다.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기를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 12:2)라고 명하셨다. 대략 BC 1446년으로 짐작되는 이 해에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의 종살이를 마치고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나온 그 달을 한 해의 새로운 정월로 삼도록 하신 것이다. 이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1월 10일에 양 또는 염소를 준비해 두었다가, 14일 해가 질 무렵 잡아서 피는 집 문의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불에 구워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인 무교병 및 쓴 나물과 함께 먹었다. 남은 것은 모두 불에 태워 없앴다. 그들은 먹을 때 허리띠를 조여 매고 신발을 신은 채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었다. 그런 후,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약속의 땅을 향해 그날 밤에 출발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유월절의 유래이다. ‘유월’의 구약성경 언어는 ‘페사흐’이고, 신약성경 언어는 ‘파스카’인데, ‘재앙이 넘어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롭게 부여된 이 ‘새 해’는 통상적인 단순한 새 해가 아니다. 그 속에는 생명(life, 삶)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생각해 보자. 문명 강대국 애굽의 주요 노동력이 모두 빠져나가는 상황을 그 나라의 왕인 바로가 묵과하고 용납하겠는가? 가당치 않은 상상이다. 그것이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탁이라고 선지자 모세가 바로에게 강변할지라도, 상식과 관습과 일상을 초월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인식도 포기도 할 수 없는 법이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은 그 상식과 관습과 일상의 법칙을 무너뜨린 하나님의 역사役事하심이다. 열 가지 재앙을 요약하면, 그것은 모두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것들이다. 열 번째-첫 태생의 생명을 모두 죽이는-재앙은 생명의 절정이다. 하나님은 그 재앙으로부터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양의 피를 통하여 재앙이 ‘넘어가게’(유월踰越)’ 하신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1세대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다. 이들은 니산월을 기점으로 변혁을 경험하였다. 유월절 이전에는, 비록 애굽에게는 상대적 이민족이긴 하였으나, 정착된 곳에서 안정된 삶을 영위하였다. 이후의 삶은, 한 곳에 정착한다는 개념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 백성 전체가 잠시 머무는 행위, 그리고 다시 미지의 땅을 향해 출발하는 모든 행위는 자신들의 의지와 결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었다. 심지어 각 지파별로 장막을 치거나, 다시 그 장막을 거두어 행진하거나, 신앙공동체 생활의 중심인 성막을 제작하여 설치하고 거두는 일 등 일체가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에 따른 것이었다. 생명을 유지하는 식량조차도 그들이 손수 경작한 곡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나’였다. 물을 바위에서 나게 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리고 전체 백성을 통치하는 법은 현대국가의 헌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 율법이었다. 모든 여정에 ‘낮의 구름기둥, 밤의 불기둥’, 그리고 전쟁을 주관하시는 여호와께서 보여주셨듯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섭리가 있었고, 반면에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순종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그런 뜻을 대언하는 선지자, 대신하는 통치자였다. 과연 그것은 변혁이었다.

에스겔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통치 수단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 수단은 수없이 많겠지만, 상징적으로 네 가지를 꼽는다. 칼, 기근, 온역, 사나운 짐승이다. 칼(전쟁)은 여호와께 속한다(삼상 17:4). 솔로몬은 온역(전염병)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왕상 8:37). 모세는 온역과 칼이 백성의 통치 수단임을 바로에게 최초로 말하였다(출 5: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면서, 대신 ‘사나운 짐승’을 멸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레 26:6). 사나운 짐승은 짐승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다. 국가는 전쟁을 통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기근을 통해 수많은 문명이 흔적도 없이 역사 곳으로 사라졌다. 페스트는 농경문화를 상공문화로 바꾸었고, 종교개혁을 초래하였다. 사나운 짐승들은 이런 과정 속에 적극 개입하였다. 사나운 짐승들은 지금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파괴하면서 법으로 어린아이들에게 동성애 및 젠더 교육을 의무화하고, 남편과 아내라는 유구하고 불변하는 개념의 호칭을 사용치 못하도록 하고, 양의 가죽옷을 입고 교회의 명패를 단 채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능멸한다.

하나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음으로써 무한한 지적(Intelligence) 능력을 지닌 아담의 후예들이 AI를 통하여 보여 줄 미래의 세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AI는 하나님의 창조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둔갑시키고, 영혼을 담고 있는 신체에 AI를 접목시켜 초능력의 신생인류를 추구한다. 그 끝은 어디일까? 하지만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고, 온 우주에 충만하시며, 사람의 머리털까지 헤아리시고, 심장을 살피시고 폐부를 시험하시며(렘 17:10),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신다(히 4:12).

변혁을 통한 새로운 문명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거저 AI의 편익에 편승한다면,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아담과 그 아들 가인과 아벨 이후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신앙을 저버린 적이 없다. 시대와 장소와 인종과 문화에 따라 그 형태는 다양할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변혁의 시대에도 신앙의 본질은 변함이 없고, 교회는 그 본질에 더욱 충실함으로써 주어진 사명과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예배와 기도, 교육, 전도, 사회봉사 등 모든 면에서 교회의 역할은 적어도 외적인 형태면에 있어서는 과거의 관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교회는 외적 현상에 치중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내면을 향해야 하고, 영혼의 심연에 좌정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고, 보고, 듣고, 깨닫고, 교통 속에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교회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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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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