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물 공장 공장장이 여직원들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직물 기계가 돌아가다가 실밥이 엉키면 여러분들은 즉시 내게 보고하세요”
그런데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한 여직원이 야간작업을 하다가 그만 깜박 졸았는데, 순식간에 실밥이 여기저기 엉켜버리고 말았다. 그 직원은 공장장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 공장장이 지시한 대로 즉시 보고 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엉킨 실타래를 풀려고 갖은 애를 썼다.
그러나 실밥은 더욱 복잡하게 얽혀 결국 기계가 멈춰 버렸다. 그때서야 여직원은 놀라 공장장에게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공장장은 즉시 보고하지 않은 것을 나무랐고, 여직원은 “제가 최선을 다해 실을 풀어보려고 했는데 그만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변명했다. 공장장은 “네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실밥이 엉켰을 때 ‘즉시’ 내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네가 그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데, 오병이어 기적 사건이 퍼뜩 생각났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사람들이 남자만 오천 명, 남녀노소 약 2만 명 가까이나 모여 있었다. 말씀 듣는 것도 좋지만, 그대로 두면 모두 배가 고파서 힘들 상황이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고 물으셨다.
왜 여러 제자들 가운데 빌립에게 질문하셨을까? 빌립이 계산적이어서였을까?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벳세다가 빌립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빌립은 벳세다 출신이기 때문에 동네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필이면 빌립에게 물으시고 그를 시험하신 것(요 6:6)이다. 그때 빌립이 뭐라고 답했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7)라고 답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먹이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모르셔서 물으셨을까? 그만큼의 비용이 수중에 없음도 모르시고 물으셨을까? 그만큼의 돈이 있다 하더라도 그 많은 무리들을 먹일 식당이 근처에 없음을 모르시고 물으셨을까? 아니다. 그럼 왜 물으셨나? 혹시라도 빌립 아니면 다른 제자라도 예수님이 바라시는 정답을 얘기하는 이가 있는지 보고자 하심이었을 게다. 그런데 아무도 그 답을 유추조차하지 못했다.
예수님께 오병이어를 갖고 나온 안드레는 달랐을까? 아니다. 예수님이 “뭐 좀 있나 가서 보라”(막 6:38)고 하셨기에, 안드레가 무리들 가운데 한 아이가 소유하고 있던 오병이어를 갖고 나온 것이다.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자발적으로 갖고 나온 게 아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그걸 갖고 나오면서도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라고 말했다. 빌립과 별 차이 없는 안드레의 불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힘으로는 2만 명에 가까운 무리들을 먹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몰라서 물으셨을까?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최소한 예수님의 질문 자체에 힌트가 들어있음을 파악했어야 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한 내용이 무엇인가?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주목했어야 하나? ‘어디서’이다. ‘어디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인데, 몰라서 물으셨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자신들이 지금까지 경험해온 예수님의 방법을 돌아봤어야 했다.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해답은 무엇일까?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마 14:19b-20a).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단어가 있다. ‘하늘을 우러러’이다. ‘우리가 어디서?’의 해결책은 바로 ‘하늘을 우러러’이다. 그렇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자비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능력을 절대적으로 의지한 채로 미리 감사를 하신 것이다. 이것을 ‘선불감사’라고 한다. 그만큼 신뢰가 깊었기에 가능한 감사이다.
예수님은 공장장처럼 제자들의 힘으로는 그 모든 일이 불가함을 잘 알고 계셨다. 제자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해결책을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라는 대답을 했어야 한다. 왜 그 답을 하지 못했을까? 자기들 힘과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졸다가 실밥을 엉키게 한 여직원이 혼자 힘으로 애쓴 것처럼, 자기네 방법으로 해결할 방법을 강구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불가함을 모르고 계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했어야 한다.
여직원이 공장장에게 즉시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일이 꼬이지 않고 쉽게 해결했을 것인데,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찾으셨듯이, 적어도 한 번쯤은 그들도 하늘을 쳐다봤어야 했다.
살아가면서 우리의 힘과 세상의 방법으로는 해결 못 할 불가능한 일들을 많이 만난다. 그때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해결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 할 때가 많다.
하지만 불가능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공장장 되신 하나님을 떠올리면서 그분의 도우심을 즉시 요청해야 한다. 그러면 ‘불가능의 상황’이 ‘가능의 현장’으로 변화될 것이다. 오늘 불가능의 늪에서 허덕이는 이가 있다면 주님이 의지하신 하늘의 하나님을 우러러보면서 감사함으로 그분께 도움을 요청하기 바란다. 그러면 ‘Mission impossible’이 ‘Mission possible’로 바뀌게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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