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 아닌 아비가 되기를 원했던 바울도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라고 말씀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전도자로 살아낸 자기 몸에 흔적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다림은 흔적을 남깁니다. 그 몸에 나타난 기다림의 흔적은 만남을 마중합니다. 우리는 인생 여정 내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세월에도 흔적을, 역사에도 흔적을, 급기야 우리 몸에도 흔적을 일구며 살기를 즐거이 감내합니다. 그리고 그 얼굴과 얼굴이 마주 대할 그날의 만남을 손꼽아 소망합니다. 이 기다림은 정말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게 합니다(골 3:2). 그렇게 찬송가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는 늘 들어도, 늘 불러도 가슴 뭉클한 설렘과 떨림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흔적을 새기며 이 만남을 마중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글을 통해 새록새록 기다림이 솟아오르는 청춘이시기를 말입니다.
정진호 – 기다림과 만남
아론은 다소 황당한 답변을 제시한다. 황금 송아지가 불에서 저절로 나왔다는 게 아닌가? 현대인의 눈에 비친 아론의 변명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다. 마치 신상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처럼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의 주석가들은 아론의 대답을 “궁색한 변명” 혹은 “어처구니없는 변명”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고대 근동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게 반응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아론의 답변이 신상을 만드는 문맥에 들어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고대 근동 사람들은 입 씻기-입 열기 의식을 통해 신상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의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부분은 신상 만들기 작업에 인간이 개입했다는 부분을 철저히 부인함으로써 신상의 신성을 극대화하는 일이었다. 이와 같은 배경지식은 아론이 출애굽기 본문에서 의례사제의 역할을 담당했다는 독법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아론의 답변을 신상 만들기 의식의 한 요소 인위적인 흔적을 지우는 요소로 볼 수 있게 한다.
이상환 – 신들과 함께
한국교회의 위기 극복은 교회의 ‘교회다움’과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자기 성찰에 대한 모색과 교회의 존재이유와 존재양식에서 다시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 과정을 통해 한국교회의 실체적 모습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감을 점검하며, 또 교회의 본질적 모습을 확인함으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한국교회 선교 방안을 새롭게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교회는 성서가 가르치는 가치와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저자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새로운 이유 때문에 제도적인 교회를 떠나 가나안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교회가 자신만을 위한 교회가 아닌 ‘세상을 위한 교회’, ‘세상을 향한 교회’로 자리매김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가나안 교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그들이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게 아니라 신앙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떠난다.”라는 세간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녹색순교의 정신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삶의 뒤안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
강춘근 – 사회선교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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